최병용 칼럼니스트

지난 5월 15일은 38회 스승의 날이었다. 아이러니하게 기념의 대상인 교사들의 심기가 가장 불편한 날이다. 교사들은 “스승의 날 며칠 전부터 교사를 비하하는 자극적인 기사로 도배하며 교사와 국민 간 갈등을 조장하다 스승의 날에만 ‘스승을 존경 합시다’라는 기사를 내는 언론이 가장 싫다”며 “스승의 날을 폐지하고 교사의 날을 만들어 하루 쉬게 해주는 게 가장 큰 대접이다”라고 한다. 명예도 자부심도 자긍심도 사라진 현실에서 스승의 날은 언론과 인터넷 댓글충들이 달려들어 교사들에게 집단 린치를 가하는 날 같다.

스승을 존경하는 풍토를 조성하기 위한 제정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득보다 실이 많은 날이 됐다. 마음이 불편함을 넘어서 모멸감까지 느끼는 스승의 날을 기념일에서 제외시켜 달라는 국민청원에 동참하는 교사들도 많다. 나를 이끌어 준 모든 이들이 스승인 세상에서 굳이 학교에서만 기념식을 할 이유도 없다. 스승의 날의 존폐여부는 당사자인 교사들의 의견을 들어 결정하면 되는데 매년 언론과 국민들이 존폐를 두고 왈가왈부하고 있는 것도 난센스다.

스승의 날은 법정기념일이라 학교에서 기념행사를 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가 체험학습을 나가거나 휴업을 하며 사실상 행사를 거부하고 있다. 교육부 집계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교 가운데 약 5.8%인 694개 학교가 ‘재량휴업일’로 지정했다. 재량휴업일은 수업 일수에 포함되지 않아 방학을 하루 줄여야 하지만 오죽하면 휴업일로 지정하는지 공감이 간다. 휴업일이 아닌 학교도 오전 수업만 해 수업도, 기념식도 제대로 되지 않는 반쪽 날이 됐다.

스승의 날이 존속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교권이 추락해 교사를 더 이상 스승이라 여기는 풍토가 사라졌다고 스승의 날을 폐지하면 스승 존경 풍토의 고유문화가 사라진다”고 한다. 기념일로 지정 돼야 존경 풍토가 조성된다는 자체가 국민들 수준을 60, 70년대 새마을 운동 시대 국민들로 여기는 것이다. 스승의 날이 스승의 은혜를 되새길 수 있는 좋은 날이 된다면 유지가 바람직하지만 당사자인 교사를 폄훼하고 교사를 비리 집단으로 매도하며 온갖 부정적 기사로 도배하는 날이라면 폐지가 옳다.

자녀들이 교사나 스승에게 막 대하는 걸 부모가 감싸며 자녀가 올바른 인성을 지닌 사회인으로 성장하길 기대해선 안 된다. 부모가 교사나 스승에게 갑질하는 모습을 보며 자란 아이들은 사회에서 갑질하며 손가락질 받는 성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부모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교사가 최선을 다하다 발생한 학교 내부의 일을, 자식 사랑에 눈이 멀어 한치 앞만 보고 자식 앞에서 교사를 비하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교사를 이해하는 쪽으로 자녀의 마음을 보듬어야 그 자녀가 더 훌륭한 인성을 지닌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요즘 학교에서는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조차 배우지 못한 막 돼 먹은 아이들이 교사에게 반항하며 대든다. 교사에 대한 존경심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동네 아는 어른에게도 하지 못할 버릇없는 행동만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자녀가 자라 절대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다. 인성이 바닥인 아이들의 부모를 만나보면 그 아이의 인성이 이해가 간다. 인성은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처럼 가정교육, 밥상머리 교육에서 나오지 학교가 책임져 주지 않는다. 학교의 인성 교육으로 학생을 바꿀 수 없다.

스승의 날을 폐지하던지 스승의 날을 ‘교사의 날’로 바꾸는 게 낫다. 최소한 교사의 전문성과 지위라도 인정해주는 교사의 날이 적합하다. ‘교사=스승’이란 등식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됐다. 스승이 존재하는 않는 시대에 교사를 스승에 빗대니 반발이 심하다. 교사들도 스승이 아닌 수업하고 학생을 지도하는 전문직으로 대접받길 원한다. 근로자의 날처럼 3월 개학 후 2개월간 쉼 없이 달려온 교사들이 학교를 벗어나 하루 쉬며 재충전하는 날인 ‘교사의 날’로 바꾸는 것을 대다수 교사가 원한다.

교사가 학생들을 봉사와 섬김의 대상으로 봐야 하는 감정노동자인 서비스직이 됐다. 교사의 손발을 꼼짝도 할 수 없게 묶어 놓고 스승의 날에 병 주고 약 주듯이 기념식을 해야 고마워할 교사도 없다. 교사, 학부모, 학생 모두가 불편한 날이다. 스승의 날이 폐지돼야 교권이 더 추락하지 않고 교사가 행복할 수 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