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보거나 문제집으로 공부하는 친구 등 자신이 세운 목표를 이루는 토끼똥 학생들. (사진=이지영 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공부만 하는 것보다 주체적이고 인격적으로 자랐으면 합니다”

토끼똥에서는
스스로/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배웁니다.
마음을 내어, 몸을 쓰고, 서로 도우며, 신나게 배웁니다.
아이도, 어룬도 같이 배우고 함께 나누는 삶을 가꾸어 나갑니다.

토끼똥은,
경제적으로 넉넉하기만 하면 누릴 것이 차고 넘친 이 세상에서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하는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배움값은 무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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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난로를 녹이기 위해 컵에 따뜻한 물을 붓고 기다리고 있어요. 전 기다리고 있고요.” (사진=이지영 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6호선 망원역 2번 출구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방과 후 교실 ‘토끼똥’을 찾았다. 아직 학교 수업이 파하지 않은 터라 초등학교 5학년생인 윤해솔 양만이 오늘(이혜리) 선생과 함께 있었다. 십여 분이 흐른 후 또 다른 상근 선생인 기린(박혜린) 선생이 자리를 함께했다.

학생들이 몰려오기 전에 오늘 선생과 기린 선생이 신개념 방과 후 교실 토끼똥이 생겨난 이유부터 지향하는 목표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토끼똥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중·고학년으로만 구성됐으며 현재 15명의 학생들이 올망졸망 모인 방과 후 교실이다. 다른 방과 후 교실과 무엇이 다를까 눈여겨보던 중 앞에 놓인 시간표가 유독 눈에 띄었다.

요일마다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다르다. 다른 방과 후 교실이라면 당연히 국영수사과 등 학업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공부 프로그램으로 가득하지만, 토끼똥에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공부 이야기를 눈에 씻고 찾아볼 수 없다. 물론 화·목요일엔 ‘집중수업’을 하지만 천편일률적인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공부하고 싶은 주제를 정한 뒤 다양한 방식으로 수업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니 학생마다 공부하는 과목도, 목표양도 전부 제각각이다.

“해솔이는 영어를 포함해 싫어하는 과목을 죄다 화요일에 몰아넣었어요. 해솔이가 싫어하는 요일이 바로 화요일이거든요. 이처럼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대신 그날 정한 목표만큼은 꼭 달성해야 하는 것은 의무이죠.”

요즘 학생들은 공부를 하기 위해 학교 수업이 끝난 후 학원으로 직행한다. 학원에서 배우는 수학과 영어가 그들의 삶을 양적 질적으로 향상시킬 것이라고 맹신하면서 ‘왜’ 공부를 해야만 하는가에 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부모들은 자녀가 뒤쳐질까 두려워 무조건 학원으로 몰고 있다. 부모 역시 학원과 과외만이 우리 아이를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최선책이라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머리 공부가 아닌 다른 공부를 시키기란 여간 쉽지 않다. 혹여 내 아이가 뒤쳐질까봐 선뜻 다른 길을 선택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토끼똥에서는 먼저 사람이 되는 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책임과 선택·의무를 놀이 속에서 자연스레 익힐 수 있도록 장을 만든다. 토끼똥에서 만난 아이들은 하나같이 자기주장을 똑 부러지게 말한다.

토끼똥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제자와 선생의 관계다. 유교사상이 짙은 우리에게 선생님의 별칭과 함께 반말을 한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곳에서 가능하단다. 그래서 대다수의 아이들이 “오늘, 오늘”이라고 이혜리 선생의 별명을 부르더니 “나 간식 먹고 싶어”라든지 “벽화 그리는 날이지?” 등 자연스레 말을 내려놓는다. 기린 선생에게도 아이들은 “기린, 기린” 부르며 재잘거리기에 바쁘다.

“아이들은 집에 와서 엄마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듯 우리에게 말합니다. 아이들은 학교 마치고 공부방에 오면 공놀이를 하고, 연극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죠. 자치회의도 하고요. 그래서 아이들은 이곳이 공부방이 아니라 놀이방이라고도 말을 할 정도죠.”

일과 놀이, 공부가 동떨어진 것이 아닌 유기적인 관계라고 아이들에게 몸소 가르친다. 예를 들어 ‘욕’에 대해 안건이 들어오면 자치회의를 통해 왜 욕을 쓰면 안 되는지 어떻게 해야 욕설을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를 한다. 거창한 진행은 아니지만 회의를 통해 토끼똥 친구들은 자신을 되돌아보고 긍정적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장려한다.

“많은 이름 가운데 사람들이 ‘토끼똥’을 선호했습니다. 나중에 토끼 같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동글동글 건강한 똥을 눌 수 있는 공간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죠. 여기서 스스로 또는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아이든 어른이든 배우고 함께 나누는 삶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 알아서 척척척! (사진=이지영 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앞에서 살펴보듯 토끼똥에는 대안학교 체제가 맞물려 있다. 학교 공부를 마친 후에도 또 공부를 해야 하는 공부방이 아닌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내일의 꿈을 위해 오늘을 먹는 아이들이 어울려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의 아이들도 있지만 단순히 친구들과 놀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체험하고 싶은 아이들이 한데 모여 있다. 아이들은 이곳저곳을 누비며 함께 자라난다.

늘 학기가 끝날 때면 아이들이 벌여 놓은 활동으로 자그마한 책자를 만든다. 지난 학기를 마치고 ‘토끼똥 빵집의 비밀 요리책’ ‘토끼똥 놀이사전’을 펴냈다. 전부 아이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요리·놀이법을 담은 책이다.

인터뷰 당일은 식당 ‘문턱 없는 밥집’ 벽에 그림을 그리는 마지막 날이었다. 이날만큼 어린이 화가들은 피카소가 울고 갈 정도로 솜씨를 뽐냈다. 이 또한 이번 학기가 끝날 즈음 작은 책자에 추억이 담기리.

토끼똥에서 아이들 키가 한 뼘 한 뼘 자랄 때마다 꿈 역시 자라고 추억은 깊어만 간다.

“아이들과 함께 저희 선생님들도 자라나고 있습니다. 꼬마들과 함께 있으면 늘 새롭거든요.”

▲ “건의는 이곳에 해 주세요.” ⓒ천지일보(뉴스천지)
작은 사람들이 행복한 마을공부방 토끼똥은
교장: 윤구병, 홍세화 선생님

토끼똥, 토끼똥, 토끼똥….
소리 내어 말해 보세요.
푸훗, 웃음이 나지요?
여간해선 잊어버리지 않겠지요?
토끼똥은 그런 이름입니다.
누구나 미소짓게 만드는 우리들의 예쁜 이름이지요.
토끼같이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이
동글동글 건강한 똥을 눌 수 있는 공간,
그런 공간을 꿈꿉니다.

현재 초등 3~6학년 15명의 아이들이 한데 모여
저마다의 빛과 향기로 토끼똥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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