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계석 음악평론가가 국악 대중화를 위한 방법을 요목조목 말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탁계석 한국예술비평가협회장
“판페라·국악칸타타, 국악에 클래식 양식 입히니 사람들 좋아해”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국내에 서양음악이 울려 퍼진 지 어언 120여 년이 흘렀다. 근대화시절만 하더라도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던 터라 클래식이라 불리는 서양고전음악이 국내 음악계에 터줏대감으로 군림해 왔다. 그러는 동안 우리 소리인 판소리와 민요 등은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갔다. 민중의 소리는 낡은 전통으로 전락했고 진부하게 여겨졌다. 클래식을 배우는 수요는 급증하여도 국악을 선뜻 배우겠다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급기야 국악을 지켜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게 됐다.

서양음악에 비해 대중화가 이뤄지지 않은 국악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힘쓰는 이가 있다. 서양음악 전공자로서 국악 알리미로 변신한 탁계석 음악평론가이다. 그에게서 국악의 대중화와 국악과 양악의 혼합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악과 양악은 서로 각자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지금도 역시 국악은 국립국악원, 양악은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 등의 무대에서 각각 선보이고 있다. 물론 성량과 규모가 다르기 때문에 무대를 달리할 수 있으나 두 음악의 선은 분명히 그어져 있는 현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서양음악을 배우러 본고장으로 유학을 떠나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만큼 양악은 빠른 시간 내에 우리에게 친숙해졌다는 이야기이죠. 다만, 우리 것이 도외시되다 보니 고유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는 점이 문제입니다.”

작곡가 중심으로 국악의 필요성이 수면 위로 떠올라 30여 년 전부터 양악에 국악을 접목시키는 실험이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양악의 작곡기법에 국악을 넣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양악과 국악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보니 합의점을 찾는 데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전통도 중요하지만 현대인들에게 강요할 순 없죠. 국악을 계승 및 발전시키는 현대적인 해석이 필요합니다. 양악에 국악을 넣는 것도, 국악에 양악을 넣는 것도 이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험을 해야죠. 이는 국악의 대중화를 위한 절체절명의 선택입니다.”

무조건적으로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는 억지 춘향의 주장은 대중들을 충분히 납득시킬 수 없는 노릇이다. ‘A는 B’라는 공식이 있으면 좋으련만 이제야 국악을 대중화하자는 데 불이 붙은지라 실험 수준이다.

탁 평론가는 지난 4일에 열린 <본 본 번(本 Born Burn), 판소리 세계를 만나다>를 보고 연신 대단하단다. 그도 그럴 것이 피아니스트 임동창 씨가 마련한 무대는 판소리와 오페라를 버무려 ‘판페라’였기 때문이다. ‘국악의 세계화’라는 슬로건을 내건 임 씨의 공연에 탁 평론가는 전적으로 만족했다는 후문이다.

“보통 판소리는 고수(鼓手)와 소리꾼 각 1명씩 나옵니다. 하지만 이번 <本 Born Burn, 판소리 세계를 만나다>의 경우, 오케스트라의 형식을 빌려 바이올린·첼로·콘트라베이스 등 양악기와 가야금 해금 거문고 대금 모듬북과 같은 국악기를 무대에 올렸죠. 소리꾼이 대목을 잠시 멈추면 국악기와 양악기랄 것도 없이 모든 악기가 한데 어우러져 분위기를 돋웁니다. 음이 풍성해지니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습니다.”

한편 탁 평론가는 대부분의 클래식 연주자들이 국악에 흥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아쉽다고 전했다. 국내에서 다뤄지는 서양음악 역시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헨델 쇼팽 등의 작곡가 위주로 연주되다 보니 레퍼토리가 매번 같다. 이러한 상황은 국악계도 마찬가지다.

“음악은 한곳에 머무는 장르가 아닙니다. 임준희 작곡가의 국악칸타타 <어부사시사>라든지 <수궁가 칸타타> 등 새로운 음악을 발굴하면서 대중 친화적인 음악을 만들어야죠. 그러다 보면 우리네 전통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많아지지 않겠어요? 국악과 대중을 이어주는 다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음악에 부족한 부분은 바로 ‘양식화’하는 것이다. 반면, 서양음악에서는 로코코·바로크·고전·낭만주의뿐 아니라 칸타타 등 다양한 양식이 있다. 양식은 시대마다 다른데 우리는 현재 서양식 구조에만 머물고 있다는 게 탁 평론가의 생각이다. 이는 두 음악을 연주하려는 사람들이 실험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북한이 서양음악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전통음악과 클래식을 접목시켜 현대적인 감각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갔죠. 결과는 성공이었습니다. 우리 국악계도 왕성한 실험을 벌이고 있습니다.”

특히 국악을 세계화시켜야 하는 부분에 있어서 그는 우리 음악을 세계 어느 곳에서 연주할 수 있도록 양악기에 맞춰 악보를 만들자는 제안도 했다. 그의 말은 즉, 양악기는 방방곡곡에서 쉽게 찾을 수 있으나 국악기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들어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도 언제 어디서나 우리 음악이 울려 퍼질 때 비로소 세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탁 회장은 “보존할 것과 개발할 것을 구분해야 한다”며 “악기는 어떠한 멜로디든지 악보만 있다면 연주할 수 있기 때문에 국악을 양식화하는 것도 세계화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전통 음악을 배우기 위해 국악학교가 수십여 개가 있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이는 국악이 대중화될 수 있다는 증거예요. 여기서 더 나아가 대중들의 코드를 읽는다면 국악의 대중화는 곧 이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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