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중국 춘추(春秋)시대 제(齊)나라 영공(靈公)은 궁중의 여인들을 남장 시켜 놓고 즐기는 괴벽이 있었다. 곧 이 습성은 일반 민간에도 퍼져 남장 여인이 나라 안 도처에 퍼져 나갔다. 이 소문을 듣고 영공은 궁중 밖에서 여자들이 남장하는 것을 왕명(王命)으로 금지시켰는데, 이 영이 시행이 잘 안 됐다. 그래서 왕은 왕명이 시행 안 되는 이유를 물었다. 안자는 “폐하께서 궁중 안에서는 남장 여인을 허용하시면서 궁 밖에서는 금하시는 것은 마치 양의 머리를 문에 걸어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궁중 안에서 여자의 남장을 금하소서”라고 했다. 영공(靈公)은 안자의 말대로 궁중에서도 여자가 남장하는 것을 금했더니 한 달이 못 돼 온 나라 안에 남장 여인은 없어졌다.  

북한은 인도주의적 쌀 지원이 절박한 목전에서 무려 두 차례의 탄도미사일 도발로 남북한의 9.19군사합의를 보기 좋게 깨 버렸다. 주한미군은 북한이 5월 4일과 9일 발사한 미사일 3발 모두 동일한 종류의 신형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이라는 잠정 결론을 내리고 ‘KN-23’이라는 식별코드까지 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정부와 군은 어제도 “한미가 공동으로 발사체 특성과 제원을 정밀 분석 중”이라고 기존 입장만 되풀이했다. 대신에 정부는 그간 유보해 온 국제기구의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에 대한 800만 달러 집행을 결정하고,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의 방북도 승인했다.

정부도 북한이 쏜 발사체가 탄도미사일이라는 평가에 대해선 적극 부인하지 않고 있다. 이미 한미가 그런 분석 결과를 내부적으로 공유한 것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다만 국가안보실장은 17일 “그게 주한미군사령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 지금까지 한미의 공식 입장은 양국 정부가 긴밀히 분석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가 머뭇거리는 이유는 남북관계를 고려한 정책적 판단 때문일 것이다. 북한 발사체가 탄도미사일인 것으로 결론 나면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모든 시험발사’를 금지한 유엔 제재 위반인 만큼 대북 규탄과 경고, 나아가 군의 대응 조치도 뒤따라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든 대화를 복원하기 위해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적 지원을 시작으로 식량지원까지 추진하는 정부로선 자칫 북한을 자극할까 걱정이 앞서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정부가 ‘한미 공동의 분석’을 내세우며 은근히 미국에 최종 판단을 미루는 듯한 분위기도 엿보인다.

남북관계는 걱정하면서 우리 영토가 자칫 초토화 될지도 모르는 일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정부가 애처롭다. 북한이 쏜 탄도미사일은 정확도와 파괴력을 높인 가공할 신형 무기로 남한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소형 핵탄두 탑재도 가능하다. 낙하 단계에서 목표물을 찾는 유도기술까지 갖춰 요격도 어렵다.

바다 건너 미국에선 “단거리일 뿐”이라며 넘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에겐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위협인 것이다. 그런데도 어떤 위협적 도발인지 규정조차 못한 채 아무 일 없는 듯 넘긴다면 북한의 명백한 도발에 면죄부를 주고 김정은 정권을 더욱 기고만장하게 만들 뿐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북한과의 관계가 잠시나마 호전된다 한들 오래 갈 리 없고, 전반적인 남북관계를 엉망으로 만드는 결과만 낳을 것이다.

지금껏 도발과 보상이란 악순환의 싸이클이 30여년 가까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우리 정부가 모를 리 없다. 이제 북한에 대해 따질 것은 분명히 따지면서 우리의 대북 대응태세도 다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향후 남북관계도 정상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여기서 북한은 ‘받아먹는 자의 자세’를 좀 갖춰야 하지 않을까.

우리 정부가 대북 인도적 지원을 발표한 이후에도 북한의 언론은 한국 정부를 건드리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언제까지 북한에 끌려 다닐 거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잠들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북한은 이중적인 대남정책에서 벗어나 정녕 살길이 있음에도 벼랑끝을 향해 치닫는 작금의 ‘오기’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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