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2019.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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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희 건축가
인생은 때때로 소풍에 비유되기도 한다. 어떤 소풍은 즐겁지만 어떤 소풍은 그렇지 않다. 학창시절 소풍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 기억이 있다. 

놀이기구라고는 구경할 수 없는 허허벌판에서 종일 보물찾기만 해도 즐거웠던 소풍의 기억. 그 중심에는 하루를 알차게 준비했을 선생님이 있었다. 

성인이 된 후로 혼자 결정해야 할 일들이 늘어갔고 많은 고민을 해왔다. 그 고민의 중요한 언저리에도 스승이 있었다. 진심어린 조언을 귀 기울여 듣는 즐거운 과정이었다. 며칠 전 간단한 스케치를 했다. 

사실 너무 간단한 스케치였기 때문에 낙사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반짝 떠오른 아이디어를 그려야 했기 때문에 손바닥만한 크기의 휴대폰 노트를 활용했다. 

30W LED 모듈 두 개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에 하나는 별이나 달, 삼각형과 같은 모양이 바닥을 향하도록, 나머지 하나는 천장을 비춰 반사조명의 은은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조명을 만들어야겠다. 

조명의 실제 크기는 작지만 조명 케이스와 모듈 사이의 거리를 어느 정도 확보하면 그 모양이 먼 거리까지 전달될 것이다. 
천장 면과 나란하지 않게 설치된다면 더 드라마틱한 모양이 되지 않을까? 하는 등의 고민을 이어가며 일반적이지 않은 형태를 만드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는 격려를 했다. 

짧은 순간 조명의 마감은 어떻게 할지, 사용자의 입장을 상상하며 구상을 마쳤다. 그려놓은 스케치를 보니 형태를 구분하는 것도 겨우 해낼 만큼 낙서 같은 그림이 완성되었다. 낙서같은 그림 한 장에 여러 가지 고민이 담겨있다. 

다시 한참을 들여다본 그림을 통해 스승님의 옛 스케치가 떠올랐다. 수많은 건축가들의 그림은 나의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잊고 지냈지만 내가 지나온 길에 많은 부분들에 소풍을 이끄는 인솔자가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나에게 인생이라는 소풍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은 모두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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