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미중 무역전쟁이 갈수록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이 결렬되자 그 직후 4월 10일부터 2천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기존 10%에서 25%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중국은 대미 수출품 가운데 그 절반이 25% 관세를 적용받게 됐다. 이게 끝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는 3250억 달러의 중국산 제품에도 25%의 관세를 매길 준비를 하라고 라이트하이저(R.Lighthizer)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지시했다.

중국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강공 드라이브 중심에는 라이트하이저가 있다. 그는 트럼프의 경제 참모들 가운데 가장 강경한 ‘매파’ 인물로 분류된다. 그는 과거 레이건 행정부 시절 ‘플라자 합의(Plaza agreement)’를 통해 일본 경제의 추락을 이끌어 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무역대표부 ‘대표’ 직함을 달고 미국을 대표해서 미중 무역전쟁의 최전선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에 직격탄 던지는 워런의 투쟁

미중 무역전쟁은 한마디로 세계의 경제패권을 놓고 벌이는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와 ‘중국몽(中國夢)’의 싸움이다. 그 여파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미국 거대기업들에게 엄청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중국몽을 깨트릴 전사로 키우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에너지 대기업들은 그 주력부대이며 여기에 자동차와 철강 기업, 최근에는 ICT 부문까지 더해 중국을 향한 전방위적 압박은 더 거칠고 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감세정책을 밀어붙여 2017년 말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1%로 대폭 내렸다. 그 결과 돈 한 푼도 내지 않는 ‘제로 법인세’ 대기업들이 두 배로 늘었다. GM과 US스틸, 셰브런 등이 그들이다. 심지어 이미 납부한 세금을 돌려받는 대기업도 생겨났다. 아마존은 지난해 108억 달러의 이익을 냈지만 오히려 세금을 환급받은 케이스다. 이러한 대기업 정책이 어느 정도는 투자와 고용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많다. 트럼프가 자주 자랑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대기업들의 부패와 모럴해저드는 더 심해지고 있으며 경제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중산층은 점점 몰락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오늘을 뒷받침했던 조세정의마저 흔들리고 있으며 미국 민주주의도 사실상 길을 잃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런 시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차기 대선의 도전장을 던진 한 정치인의 목소리가 관심을 끌고 있다. 올해 70세인 메사추세츠 민주당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E.Warren)’이 그 주인공이다. 미국의 ‘진보정치 아이콘’으로 불리는 워런은 차기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자리에서 “정치권과 대기업의 부패를 타파하고 미국의 중산층과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싸우겠다”고 밝혔다.

삶의 역정이 감동적인 스토리로 풍부한 워런은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로서 파산법 전문가로 유명한 학자였다. 그런 그가 환갑이 지난 나이에 정치권에 뛰어들고 그 이후 대선까지 출마하는 것은 그가 현장에서 지켜봤던 미국사회의 부패한 기득권 구조와 그로 인한 중산층의 몰락, 더 나아가 심화되는 양극화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대다수 국민의 삶을 이대로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소신이 컸기 때문이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워런은 미 의회의 조사위원장을 맡아 금융구제프로그램을 담당한 적이 있다. 그는 당시 정부가 부도 직전의 대형 은행에 국민 혈세를 쏟아 붓는 모습을 지켜봤다. 응징하고 개혁해야 할 대형 은행과 그 책임자들에게 혈세를 쏟아 붓는 현실에 분노한 그는 이를 국민 앞에 폭로하고 월스트리트 개혁을 촉구했다. 2010년 오바마 행정부 때 설립된 ‘금융소비자보호국(The Consumer Financial Protection Bureau,CFPB)’은 그 성과물이다. 이렇게 인지도를 높인 워런은 2012년 선거에서 월스트리트의 거물 정치인 브라운(Scott Brown)을 꺾고 여성 최초로 매사추세츠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그 후 워런은 부패와 탐욕으로 가득한 월가를 향해 끊임없는 개혁을 촉구하면서 미국 진보정치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구축해 왔다. 민주당 소속 여성 정치인으로서 힐러리 클린턴과는 차원을 달리할뿐더러 진보정치를 놓고서도 샌더스(Bernie Sanders)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9월에는 노동자의 경영권 참여를 보장하고 경영자들의 보수를 제한하는 내용의 ‘책임 있는 자본주의 법(Accountable Capitalism Act)’을 발의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더 나아가 지난 1월에는 가구합산 순자산 5000만달러 이상을 보유한 상위 0.1%의 부자들을 향한 ‘초부유세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최근 미국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워런은 민주당 대선 주자들 가운데 조 바이든과 샌더스에 이어 지지율 3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미중 무역전쟁의 후유증이 본격화 되고 미국 경제가 결국 중산층과 노동자들을 외면한 채 억만장자들에게 엄청난 이득을 안겨줬다는 인식이 공유된다면 워런의 목소리는 더 힘을 받을 것임이 분명하다. 워런은 트럼프가 미국 거대기업의 대변자 노릇을 하며 부패의 촉매자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한 톤으로 비판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뮬러 보고서’를 근거로 아예 트럼프를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내고 있다. 미국 정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싸움꾼 워런’, 약자와 공정, 정의의 편에 선 그의 치열한 싸움이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참으로 궁금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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