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결재가 가능하도록 큐알코드 안내문이 부착된 중국 한 사찰의 복전함(왼쪽)과 보시금을 넣으면 자동으로 축원 메시지가 나오도록 한 복전함. (출처: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천지일보 2019.5.16
전자결재가 가능하도록 큐알코드 안내문이 부착된 중국 한 사찰의 복전함(왼쪽)과 보시금을 넣으면 자동으로 축원 메시지가 나오도록 한 복전함. (출처: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천지일보 2019.5.16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고요한 사찰, 불자들은 스님들이 두들기는 목탁소리에 마음을 평온히 가라앉히고, 대웅전을 찾아가 불상을 향해 절을 올리고, 불상 앞에 ‘복전함(福田函)’에 보시를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불자들은 ‘복의 밭’이 되리라는 상자에 현금을 보시함으로써, 스스로 축원을 삼기도 한다.

그런데 중국 사찰에 가면 이색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전언이다. 금강대학교 이혜숙 초빙교수는 최근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소식지를 통해 지난 4월 중국 항주(杭州)에서 아난다 문화교류센터(Ananda Cultural Exchange Center)와 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가 공동주최한 행사에 참석해 방문했던 중국의 유명한 사찰을 소개했다.

한 사찰에서는 참배객들이 보시를 할 수 있도록 복전함이 마련돼 있었는데, 현금뿐 아니라 전자결재가 가능하도록 큐알 코드가 붙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현금이 없어도 참배객들이 큐알코드로 접속해 ‘알리-페이’ 시스템으로 송금해 보시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알리-페이는 중국의 유명한 알리바바 그룹이 개발한 전자결재 시스템이다.

이 교수는 “법당의 보시금이 비교적 투명하게 관리될 수 있겠다는 점과 IT강국이라는 한국에서는 왜 흔히 볼 수 없는 문물인가 하는 점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사찰운영은 여러 측면에서 정부의 통제를 받고 우리와는 다른 여건임을 알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자들이 보시함으로써 공덕을 쌓고 복락(福樂)을 기원하는 신행이야말로 공통된 문화일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다른 지역 사찰에서는 복전함에 돈을 넣자마자 녹음해 준비된듯한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이 교수는 중국말로 쏟아지는 메시지가 궁금해 중국인 친구에게 물었고, 그 내용은 복전함에 보시를 한 사람을 위해서 평범하게 축원해주는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복전함에 센서가 있어서 자동으로 메시지가 나오게끔 해놓은 것이다.

이 교수는 “분명 기계음처럼 느껴지고 어느 면에서는 ‘만인평등’하게 축원하던 소리가 아직도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근래 일본의 어느 사찰에는 대중에게 설법을 하는 법사 로봇이 있다고 하던데, 복전함에서 몇 마디 축원의 메세지를 반복하는 자동응답기의 활용쯤이야 특별할 것도 없는 세상이 되어가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시와 공덕과 축원의 가르침을 믿고 수행하는 불자들의 내밀한 신행경험에서, 이 기계적 장치들로 인한 하등의 변화는 없을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장차 인공지능 시스템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더욱 광범위하게 통솔하는 수준에 이른다면, 인간본연의 영적이고 종교적인 차원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점점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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