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의 문화 찔러보기] 술 권하는 사회
[전경우의 문화 찔러보기] 술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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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1970~1980년대 경제성장이 한창이던 시절, 한국문학전집이나 세계문학전집 같은 것들이 많이 팔렸다. 먹고 살만해지면서 집도 크게 짓고 이것저것 살림살이도 넣고 30~50권짜리 전집을 거실에 턱 꽃아 두면 아주 그럴 듯 해 보였던 것이다. 남들 눈에 식견이 있어 보여 좋고 이왕이면 자식들 공부에 도움이 될까 싶어 월부를 해서라도 책장에 채워 넣었던 것이다. 그 때에는 사람들이 동네를 돌며 책을 팔거나 월부 책값을 받아 갔다.

한국문학전집에 빠지지 않는 작가가 현진건이었다. 일제 때 우체국장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과 중국 유학을 다녀온 뒤 기자생활을 했지만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언론계로 떠난 후 울화와 과음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작가다. <빈처> <운수 좋은 날> 등 식민지 시대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우리 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B사감과 러브레터>는 노처녀 사감 선생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그려내 오랫동안 인기를 모았던 작품이다.

<술 권하는 사회>도 현진건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1921년 <개벽>에 발표된 단편소설로,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강하다. 결혼 하자마자 남편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는 바람에 아내는 마음고생이 심했다. 남편이 돌아오면 무엇이든 다 될 것이라며 마음을 달랬던 아내였다. 그러나 유학에서 돌아온 남편은 분주히 돌아다니기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책을 읽거나 밤새 글을 쓴다. 때때로 한숨을 쉬고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하고 몸은 나날이 축난다. 그리고 술을 마시느라 밤늦도록 귀가하지 않는다.

밤늦게 고주망태가 돼 돌아오는 것이 일과가 된 남편이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집에 온다.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취한 남편에게 “누가 이렇게 술을 권했는가?”하고 아내가 묻자, 남편은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했다오!”라며 푸념한다. 아내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술 아니 먹는다고 흉장이 막혀요?”라고 할 뿐이다. 남편은 “아아, 답답해!”를 연발하며 밖으로 다시 나간다. 아내는 멀어져가는 발자국 소리에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라며 절망한다.

주인공 남편은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자신의 뜻을 펼 수 없는 식민지 조국의 현실이 답답하여 이렇게 푸념한다. “되지 못한 명예 싸움, 쓸데없는 지위 다툼질, 내가 옳으니 네가 그르니, 내 권리가 많으니 네 권리는 적으니…….” 이 때문에 답답하여 술을 마시지만, 신학문을 배우지 못한 아내는 그런 남편의 속내를 이해하지 못한다. 남편은 안팎으로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소설의 배경은 1920년대 서울이다. 100년 전, 아득한 시절이다. 그럼에도 작품 속 주인공이 술을 마시며 답답해하는 모습은 지금의 우리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되지 못한 명예 싸움, 쓸데없는 지위 다툼질, 내가 옳으니 네가 그르니, 내 권리가 많으니 네 권리는 적으니…’ 하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좋은 세상이 올 줄 알았지만 세상은 변함없이 혼돈하고, 올라야 할 것은 오르지 않고 오르지 말아야 할 것들은 줄기차게 오르고 있다. 몹쓸 사회가 술을 권하고 있지만, 술값이 또 오른다고 하니 절로 ‘아아 답답해!’ 소리가 날 뿐이다. 고약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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