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책보다 저자를 먼저 소개한다. 교과서에서 ‘터널 이론’을 배운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이론을 주장한 허시먼은 현대 경제학사의 주요 틀을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시먼이 이 책을 쓴 당시는 레이건에 이어 부시가 정권을 잡는 시기였다. 즉, 보수 집권기였고 그런 맥락에서 지금의 한국 상황과 상당히 비슷하다고 하겠다.

허시먼은 1980년대 미국에서 세를 확대해나갔던 보수주의자들과 신보수주의자들을 보며, 그들의 언어적 요소가 발휘하는 힘에 주목한다.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허시먼이 도출해 낸 보수의 수사학은 ‘역효과 명제’ ‘무용 명제’ ‘위험 명제’로 축약된다. 허시먼은 그러한 정치적 수사학의 본질을 드러냄으로써 그 주장이 왜 가치가 없는지를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조치들이 개인적 자유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주장은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가장 완전하게 표현됐다. 위험 명제가 드러난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개인적 자유와 함께 민주적 통치를 위협하는 것이 복지국가’라는 주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이러한 비난의 징조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쓰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유명한 <노예의 길>에서도 나타난다고 한다. 하이에크는 방대한 서술을 통해 복지국가에 대해 상세하고 전면적인 공격을 전개했다. 그리고 복지국가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주장은 오늘날도 계속된다. 보수의 유지를 위해서 말이다.

1960년대 이후 나온 주장은 복지국가가 민주주의나 자유를 직접 공경한다고 표현하지 않았다. 다만 복지국가가 경제 성장과 상충한다는 ‘눈에 보이는’ 위험 요소를 주장함으로써 위험인자를 퍼뜨렸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런 위험 명제는 ‘이것이 저것을 죽일 것이다’라는 형태로 축약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허시먼은 현재 아주 초보적이고 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문제들이 역사적으로 어떠한 정치적 의도에 직면했는지 살펴보고, 이들 사이에 반복되는 패턴과 그 패턴이 발휘하는 힘을 고찰한다.

엘버트 O. 허시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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