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중국에 압박과 동시에 `협조 틀' 복원 주력
中 '6자 긴급협의' 중재노력 부각..내년 1월 胡주석 방미 주목

(서울=연합뉴스) "우라늄 농축 문제가 미국의 중대 안보과제로 부상했으며, 조만간 행동방향이 정해질 것이다."

북핵을 비롯한 한반도 현안에 정통한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은 16일 점차 심각해지는 `우라늄 농축' 사태가 한반도 정세를 새로운 국면으로 몰고갈 가능성을 중시했다.

가장 극적인 내용은 최근 북한 영변의 농축시설 현장을 보고 온 지그프리드 헤커 전 로스 알라모스 국립 핵연구소 소장(스탠퍼드대 교수)의 '보고서'의 내용에 담겨있다.

그는 지난 10일 격월간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최신호에 '내가 북한에서 본 것들 : 더 이상 플루토늄만 문제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헤커 박사는 영변에서 본 원심분리기의 규모와 정교함에 "놀랐다"고 강조했다. 만약 북한이 헤커 교수에게 설명한 것이 모두 사실이라면 영변의 농축시설은 이란보다 훨씬 진전된 수준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북한이 이런 첨단 우라늄농축 시설을 드러내놓고 공개한 점을 중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을 비롯한 중동 국가로의 수출 가능성을 과시하며 미국을 압박하려는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심각성에 따라 미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은 천안함 도발에 이어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이 한국을 상대로 한 무력도발과 함께 '핵 위협' 카드를 동시에 구사하고 있는 상황을 '과거와 다른 도발형태'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북핵 문제와 북한의 도발을 함께 엮어서 다뤄야할 지, 아니면 분리 대응을 할 것인지 등과 연결되는 문제가 되고 있으며, 한미 동맹은 물론 일본까지 포함하는 미국의 전반적인 동아시아 정책의 틀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은 일단 북한의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을 비난하고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행동에 앞서 분위기를 조성하는 모양새다.

특히 미국은 핵체제의 비확산에 역점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관련 기술 및 물질이 다른 국가로 확산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게리 새모어 백악관 핵 비확산 담당 보좌관은 "북한의 핵프로그램이 여러 장애물에 막힌 이란 핵프로그램보다 더 효율적이고, 더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이 중동에 (핵기술을) 수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미국 대북전략의 핵심 요소가 돼야 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제 관심은 미국이 구체적으로 어떤 대응을 하느냐에 쏠린다.

미국의 내부기류는 두가지 흐름이지만 본질적으로 한방향으로 향해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국제사회가 눈치채지 못하는 상황에서 첨단 우라늄 농축 시설을 건설한 것은 중국의 '방조'나 `직무유기'없이 가능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중국에 대한 강한 분노와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사태가 간단치 않은 국면으로 넘어간 만큼 상황의 추가악화를 막아야 하는 긴박감이 있다. 그러자면 다시 중국과의 협조가 중요해질 수 밖에 없다. 특히 원심분리기 제작에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만큼 관련 부품이 다시 북한에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단속'이 더욱 필요할 것이라고 소식통들은 전하고 있다.

이런 복합적인 미국의 감정은 16일 본격화될 미국과 중국간 베이징 고위급 협의에서 표출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미국은 지난 7일 워싱턴에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미국의 현 상황에 대한 인식을 한일 양국에 설명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베이징 미중 협의를 통해 미국은 중국에게 북한의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이런 사태가 초래된 데 대한 불만과 함께 `중국의 협조'를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우라늄 농축 사태를 비롯해 북한의 도발을 계속 허용하는 상황을 방치할 경우 내년 1월의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가 완전히 북한 문제로 퇴색될 가능성을 경고할 것으로 보인다. 사태해결을 위해 중국이 어느때보다도 강력하게 나서야 할 것임을 강조하는 셈이다.

중국은 그런 미국을 상대로 '일이 그만큼 심각하니 빨리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며 6자회담 수석대표간 긴급협의의 중요성을 재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이제 북핵 국면의 상황은 ▲심각한 우라늄 농축사태를 어떤 식으로든 다뤄야 하며 ▲그 창구가 과연 6자 긴급협의가 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채널을 가동할 것인지로 집약될 수 있다.

6자 긴급협의에 대해 제안자인 중국은 물론 러시아, 그리고 북한이 긍정 또는 적극적 참여의사를 밝힌 상태다.

이와 관련,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14일 브리핑에서 6자회담 재개 조건에 언급, "우리 정부의 복안을 갖고 있으나 5자간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며 "나머지 4개국과 재개조건을 협의중"이라고 밝혔다.

김 장관이 거론한 '우리 정부의 복안'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 ▲핵시설 모라토리엄 선언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중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연평도 도발에 대한 국내의 분노가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협상으로의 국면전환을 우려하는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전제조건' 제시를 통한 시간벌기는 충분히 이해할만한 외교전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지난 20년간의 북한의 협상전술을 잘 알고 있는 한국의 고위당국자들로서는 중대한 고비에서 북한의 의도에 휘말려 급격히 협상국면으로 바뀔 것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도 일정정도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분위기다. 천안함에 이은 연평도발로 한국내 정서가 악화된 상황에서 자칫 '성급한 협상'으로 인식되는 `6자틀의 가동'을 서둘러 용인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미국의 '외교시간표'가 어떻게 설정돼있는지는 잘 살펴봐야 한다. 비확산 문제에 민감한 미국이 '이란보다 첨단화된 우라늄 농축시설'을 확인한 상황에서 언제까지 시간을 보낼 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인 셈이다.

베이징 협의와 내년초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을 확실하게 견인하는데 성공할 경우 미국은 중국의 체면 등을 고려해 `적절한 시기에 6자 협의 또는 다양한 다자접촉'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소식통은 "우라늄 농축 사태의 파장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며, 북한의 도발과 한국의 국내정서, 중국의 중재노력 등이 맞물려 한동안 유동성 강한 정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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