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 作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는 벌레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몸이 변한 것에 대한 충격과 놀라움도 잠시, 그는 회사에 제시간에 출근할 수 없다는 걱정에 사로잡힌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장남의 책임감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평소 열심히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온 그레고르는 이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점점 짐짝 취급을 받는다. 사회 구성원으로 쓸모없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생을 마감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1930년대에 만들어진 무성영화 <모던 타임즈>를 연상케 한다. 감독이자 희극배우인 찰리 채플린이 제작한 이 영화는 산업화의 부조리 즉, 산업사회에서 노동자의 삶이 얼마나 단순하고 비인격적으로 바뀌어 가는지를 희화시켜 꼬집는다. 매한가지로 그레고르의 가치 역시 그동안 벌어오던 돈으로 매겨졌다.

18세기 이후 발 빠른 산업화가 이뤄지면서 인간의 존엄성보다 ‘돈’이 우선시되는 분위기가 만연해졌다. 낭만을 즐기고 인간 그 자체로 사색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사회에서 도태됐다. 특히 산업화는 1910~1930년대에 정점에 다다랐다. 그러는 동안 깨어있는 지식인은 인간의 본연과 존엄성을 찾았다. 카프카 역시 그랬다.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그는 인간이 존재하는 데에 불안을 날카롭게 집어내고 있다. 물질문명 속에서 점점 소외되는 인간상을 그리면서 사회 부조리를 고발했다.

물질사회의 부조리는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변신>을 읽은 독자들은 그레고리에게 쉽게 이입한다. 그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강요당하지 않았으나 ‘일벌레’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중고등학교 때엔 오로지 대학을 가기 위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뒤로한 채 입시전쟁을 한바탕 치르고 나면 취업전이 기다리고 있다. 개인이 지닌 존엄성과 개성을 저만치 떨어뜨려 놓고 오로지 눈에 보이는 이득을 좇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그레고르와 많이 닮았다.

100여 년 전의 사회나 오늘날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오히려 시대가 거듭될수록 인간의 가치는 점점 도량화되고 있다. 여느 개그맨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외치듯 인간 본연의 모습보다 일을 얼마나 기능적인지를 본 후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현실이다.

일에만 메인 자신을 바꾸거나 자아를 찾고 싶은가. 그렇다면 현실에서 한 발자국 물러서서 카프카의 <변신>을 읽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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