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정치적인 대립은 가장 강도 높고 극단적인 대립이다. 어떠한 구체적인 대립도 그것이 적과 동지의 결속에 가까우면 점점 정치적인 것으로 된다(칼 슈미트 <정치적인 것의 개념>). 나치의 법철학자 슈미트(Carl Schmitt)는 정치의 속성을 너무도 간명하게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거기에 도덕적이거나 경제적 가치를 결부시켜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현실적’ 투쟁관계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투쟁관계의 가장 극단적인 수단이 곧 ‘전쟁’이다. 따라서 정치는 현실적으로 이미 전쟁상태를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나치 권력의 이론적 기반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슈미트가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의 개념을 놓고 치열하게 고민하던 1920년대의 독일은 끝이 보이지 않는 ‘혼란과 위기’의 시대였다. 1차 세계대전 패배와 군주정의 몰락 그리고 막대한 전쟁 배상금 문제는 독일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 게다가 바이마르 공화국이 성립됐지만 정치질서의 재편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갈등과 대립이 심화됐다. 이즈음 러시아 혁명을 신호탄으로 들불처럼 일어나는 혁명의 기운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위기를 가속화 하면서 독일 내부까지 펄펄 끓게 만들었다. 슈미트의 고민은 이런 척박한 현실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지적 결과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와 비판으로 이어졌으며 결국 나치권력에 봉사하는 도구가 되고 말았다.

막장정치의 총성 없는 전쟁

슈미트의 지적 산물 역시 당시 독일의 ‘시대적 소산’이다. 나치가 몰락하고 냉전체제가 구축되는 과정에서도 슈미트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했다. 그러나 그 후 시대가 급변하면서 슈미트의 생각은 하나의 ‘유물’이 되고 말았다. 비록 선거정치와 국제관계에서의 편가르기식 ‘전쟁상태’가 반복되고 있지만 슈미트의 생각과는 달리 국가는 더 다원화 되고 있으며 의회민주주의는 정치체제의 주류가 된지 이미 오래다. 따라서 그의 ‘정치적인 것’은 하나의 ‘설명 도구’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이 시대를 읽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생산적 담론으로서는 역부족이다. 이미 수명이 다 됐다는 뜻이다.

그런데 슈미트가 말한 그 ‘정치적인 것’이 100여년 만에 지금 우리 곁에서 되살아나 정치판을 달구고 있다. 거의 폐족이 될 뻔했던 ‘국정농단 세력들’이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더니 이제는 가는 곳마다 무차별적인 ‘말폭탄’을 쏟아내고 있다. 거기에 무슨 팩트가 중요하겠는가. 상식이나 논리도 결여된 채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며 온갖 저주와 혐오로 가득 찬 ‘막말’을 퍼붓고 있다. 마치 ‘총성 없는 전쟁’의 현장을 보는 듯하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패스트트랙 지정 직후 열린 긴급 의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 앞에 무릎 꿇는 그 날까지 투쟁하고, 투쟁하고, 또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황 대표의 SNS에는 ‘도끼날의 야합’이라는 말도 나왔다. 그러면서 마치 슈미트의 말처럼 “의회민주주의는 조종을 울렸다”는 발언도 했다. 심지어 지난 4일 광화문 장외집회에서는 “죽을 각오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겠다”고 했다. 드디어 ‘피’와 ‘죽음’까지 나왔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를 향해 ‘먹튀 정권’이라고 하는가 하면 문 대통령을 향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말까지 언급했다. 오세훈 전 시장은 “문재인 대통령은 5년 임기를 못 채울 것”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했다. 이 뿐이 아니다. 김무성 전 대표는 아예 “다이너마이트로 청와대를 폭파시키자”는 선동성 발언까지 했다.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지 않으면 이런 말을 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정치에 대한 인식과 그 비판의 수준이 너무도 저급하다는 뜻이다.

이들은 싸우겠다는 의지만 충만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적과 동지를 갈라치기 하는 전술도 간명하다. 황교안 대표는 지난 7일 부산의 한 간담회에서 문재인 정부를 향해 “좌파혁명세력은 이 사회의 부족한 점을 파고들어 무너뜨리려는 세력들”이라고 규정했다. 심지어 “좌파 중에 정상적으로 돈 번 사람들이 거의 없다. 다 싸우고 투쟁해서 뺏은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마치 ‘강도떼’ 쯤으로 비유한 셈이다. 황교안 대표만 이러는 게 아니다. 그 주변에는 입만 열면 ‘좌파’ 운운하는 사람들로 넘치고 넘친다.

물론 자유한국당만 이러는 것이 아니다. 말보다 행동으로 쉬쉬하며 ‘우리끼리’에 매몰돼 있는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인 것’도 적과 동지의 이분법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하는 ‘그들만의 정치’를 우리는 지금도 목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패스트트랙을 막는 자유한국당을 향해 “도둑놈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막말을 퍼부었다. 집권당 대표의 인식이 이렇다면 여야는 서로가 서로를 ‘제거’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 또한 ‘총성 없는 전쟁’의 한 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대적 공생관계’의 적나라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강대강 대치, 그 내면에는 국민을 적과 동지로 갈라치기하며 국민적 분열을 끊임없이 촉발시키는 ‘슈미트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총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실상은 ‘내전상태’와 다름 아니다. 그 파편으로 인해 이성과 상식은 떠나고 중도는 길을 헤매고 있다. 이제 국민은 각자도생의 운명에 직면하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슈미트의 유령이 끝내 나치 편이 되고 말았다는 교훈만은 잊지 않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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