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 동국대 교수

 

헌법 제27조 제1항에서 보장하고 있는 재판을 받을 권리는 재판청구권으로 기본권보장을 위한 기본권이다. 재판청구권이 없다면 기본권이 침해됐을 때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 법치국가는 기본권의 최대 보장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권보장을 위한 기본권인 재판청구권은 법치국가의 실현을 위한 실질적인 기본권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법치국가원리를 탄생시킨 독일도 제19조 제4항에 권리구제를 위하여 법원에 소송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규정하여 재판청구권을 보장하고 있다.

헌법이 재판청구권을 보장하고 있는 것은 권리의 구제나 보호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재판의 결과가 재판을 청구했을 당시에 요구되었던 내용이 실현돼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법률분쟁은 사실관계를 기초로 해 발생한 법률관계가 주 내용을 이룬다. 분쟁의 원인이 됐던 사실관계가 재판의 결과인 판결로 실현돼야 한다. 그래서 재판의 청구원인인 사실관계의 확정이 중요하다. 그런데 사실관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할 가능성이 많다.

사실관계가 변화함으로써 재판결과가 무의미해진다면 재판청구권이 추구하는 권리의 보장은 실현되지 못한다. 재판은 법률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이지만, 권리구제가 핵심적인 목적이다. 재판이 권리구제를 하지 못한다면 재판청구권이란 기본권은 보장되지 못한다. 그래서 법치국가는 권리보호에 있어서 기본권의 최대한 보장을 추구하지만, 이 최대한 보장에는 헌법이 포함하고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통하여 최대한 권리보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대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보호절차과정에서 사실관계의 변화로 권리보호가 무의미해지는 것은 차단해야 한다. 법치국가의 흠이 없는 권리보호는 사법적 절차의 문제로 인하여 목표로 했던 권리가 보호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소송법상의 가처분이나 가구제제도이다. 이는 소송을 청구하면서 사실관계가 변화하지 못하도록 잠정적으로 사실관계가 확정되도록 하는 것이다.

현대 법치국가에서 가처분제도는 민사소송에서 뿐만 아니라 행정소송, 나아가 헌법소송 등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가처분이란 임시적 처분을 의미하지만, 소송법에서 가처분소송은 본안소송 전에 긴급을 요하는 경우 최대한 빠른 시간에 법원의 결정을 구하여 본안소송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권리를 보호하는 소송을 말한다. 가처분소송은 본안소송에 결부되어 있지만, 소송절차 자체는 독립되어 있다. 즉 가처분소송은 독립된 소송절차이고, 본안소송의 결과에 구속되지 않는다. 만약 본안소송의 결과를 예단하여 가처분소송의 결정을 연계한다면 본안소송의 효력을 선취함으로써 소송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렇지만 소송현실에서는 대부분 본안소송의 결과를 예상하여 가처분 결정을 하게 된다.

가처분소송은 본안소송에서 판결이 나올 때까지 걸리는 시간의 문제로 권리보호가 무의미해질 것을 우려하여 잠정적인 권리보호를 추구하는 것이다. 법치국가는 권리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처분소송제도는 재판청구권의 보장을 더욱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흠이 없는 권리보호를 추구하기 위해 가처분소송의 존재의미가 있다고 해도, 이는 어디까지나 재판청구권에 포함되는 내용이다. 따라서 재판청구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려면 가처분절차를 비롯한 소송절차 자체가 실질적인 권리보호의 수단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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