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 보스턴 주재기자

현대의 신로마, 미국은 그들만의 거북이식 서비스 문화가 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했다고, 미국에 가면 이런 문화에 익숙해져야 잘 적응하고 살 수가 있다. 외국에 한 번 나와 보면 한국의 서비스가 외국에 비해 얼마나 고급화된 양반인지, 그리고 우리나라가 얼마나 살기 편한 나라인지를 절감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선 웬만하면 고객의 요구사항대로 일처리가 친절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 사람은 ‘빨리빨리’ 문화라는 것이 있어 미국에 오게 되면 한없이 느리고 불친절하기까지 한 이러한 서비스 문화에 필자가 경험한 것처럼 똑같은 황당함을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작년에 새로 이사간 집 인터폰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새로 등록하는 데에만 석 달이나 소요를 했다. 그것도 집주인과 건물 관리자에게만 7번 이상의 독촉 전화와 이메일 연락을 한 한참 뒤에야 일처리가 해결되었다. 처음에는 아시아인이라 받는 인종차별이 아닌가 하는 오해마저 들 정도로 너무 느리고 불친절한 이런 서비스에 당황을 해야 했다.

그러나 차차 미국의 서비스 문화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이 오해는 완전히 풀렸다. 누구라도 미국에 와서 필자와 같은 경우를 당한다면, 당황하지말고, 애써 따지려 들지도 말고, 그저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연락하며 조용히 기다리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한국에서는 고객이 서비스 불만사항을 표하면, 회사는 고객에게 실수를 인정하는 정중한 사과의 말과 함께 빨리 해결하려는 노력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필자가 경험한 미국은 오히려 적반하장의 자세를 보인다는 것. 차일피일 미루며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앉아만 있으려는 게으른 서비스 정신문화를 가지고 있는데도, 미국 사람들은 거기에 모두 익숙해져 있는 듯, 그것을 큰 문제로 여기지 않아 보이는 게 이상한데, 이런 것이 문화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의와 평등이 실현된다고 믿어지는 나라, 미국.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듯 이런 이상적인 말들은 미신에 가깝지,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보인다. 인정없고 게으른 서비스 정신의 나라. 미국의 관료조직체계는 개인의 감정과 사정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조직의 생존만을 바라보는 체계인 것이다. 우리 생각 같아선, 미국이란 나라가 선진국이니 서비스도 더 좋고, 일도 더 빨리 처리될 것 같지만, 오히려 정반대인것이다.

결국 미국에선 “재수없는 일은 언제든 일어나기 마련”이란 말까지 있을 정도로, 나쁜 서비스를 경험한 날은 불운한 날쯤으로 치부하며 웃어 넘어가는 문화이다. 재화보다는 서비스가 중시되는 후기산업사회에 있어서 아시아의 서비스 정신을 미국의 것과 비교해 볼 때, 미국의 미래는 보이지가 않는다.

미국은 많이 생산해 쉽게 쓰고, 버리는 일회용 문화임과 동시에 ‘Push button(푸시버튼)’의 누름단추식 기계적 문화이다. 그리고 여기에 사람들은 그저 유기체의 각 부분으로서 기계적 역할 존재로서 취급된다. 결국 회사에 아무런 손해가 없다면, 고객의 개인적 문제가 회사의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이런 뻣뻣한 자세로 고객을 대하며, 나 몰라라식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로보트와 마주 대하는 것이 차라리 일처리에 있어 덜 상처받는 일이 되는 일이 되겠다 생각이 들 정도가 된다면 이것은 심각한 현상인 것이다.

“손님은 왕이다”란 말과는 다른 미국은 이러한 체계에서뿐 아니라 서비스 정신에서마저 아시아에 지고 있다. 무기에서는 이겼을지 모르지만, 도덕이나 정신에 있어서는 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수세기 동안 평화적인 모습으로 침략을 해오면서 부를 축적한 미국. 이 강대국이 선진국이라는 배지가 좀 무색해 보이기까지하다.

미국은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특별한 대우를 하지 않는다는 평등문화를 부르짖지만, 우리는 이 말의 허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다시 말해, 만일 모두가 고루 평등하다면, 그 의미는 고객에 대한 대우나 서비스의 전통도 아예 없애야 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평균적으로 매 3년마다 삶의 터전을 다른 지역으로 옮겨 다닌다. 이런 그들에게 전통이란 것이 있을 리 없다. 너무 많은 무기를 가진 쓸쓸한 나라. 폭력, 무감각, 냉정, 개인주의적 생각으로 바쁜 나라. 정신적 철학의 가치와 도덕적 기준, 순수한 인간애를 중요시 하지 않는 나라. 우리는 이런 미국문화를 때로 부러워하고 따라하고 있지 않은가? ‘친절함’이 곧, 가장 강한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진정한 ‘카리스마’이자 가장 강한 무기임을 그들은 진정 모르고 있는 것일까?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