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진주=최혜인 기자] 박용식 경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경상대 국어문화원장). ⓒ천지일보 2019.5.2
[천지일보 진주=최혜인 기자] 박용식 경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경상대 국어문화원장)가 2일 지역어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좋은 결실로 맺어질 것을 희망한다며 환하게 웃고 있다. ⓒ천지일보 2019.5.2

“방언 소멸, 우리 정신·문화의 소멸”

“지역어 외면, 행정과 교육의 실패”

“진주시, 국어 진흥 조례 실적 無”

허정림 “市, 보전 위해 노력해야”

[천지일보 진주=최혜인 기자] “이대로 가면 사투리는 15년 이내에 소멸할 겁니다. 지역어를 살리고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주도에 집집마다 붙어있는 ‘혼저옵서예’처럼 지역의 고유한 정체성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박용식 국어문화원장이 사라지는 지역어를 걱정하며 지난 19일 이같이 말했다.

국어문화원은 국민들의 국어 능력을 높이고 국어 문화 연구, 국어 관련 상담 등을 수행하기 위해 문체부가 지정한 기관으로 전국 16개 지역에 20개소가 있다.

경남에서는 박용식 경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국어문화원의 원장을 겸하고 있다. 일명 사투리로 불리는 지역어를 보존하기 위해 모든 힘을 쏟고 있는 박 교수를 본지에서 만나봤다.

박 교수는 “주민들이 전통적으로 쓰는 말인 지역어는 지역 정체성의 핵심”이라며 “지역의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의 정신과 문화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 지역어를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 노력은 지역민의 의무기도 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표준어는 강력한 언어정책으로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유독 표준어와 표준어가 아닌 말로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며 “교육을 통해서나 방송 시 사투리는 쓰지 말라고 가르쳐 와, 지금은 사투리 쓰는 사람들의 자존감이 많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표준어와 지역어는 가치가 동등한데도 사투리 쓰는 사람이 표준어 쓰는 사람을 만나면 부끄러워한다거나 주눅 드는 경우가 많다”며 “시내에 교정학원이 있는 것처럼 취업 앞두고 ‘교정한다’고 말한다. 구직, 사회생활도 해야 되는데 사투리를 써서는 경쟁력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점은 문제”라고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이어 “반면 송강호나 친구에 나온 장동건, 방송에 나오는 강호동도 모두 사투리를 쓰며 이를 자신의 장점으로 승화한다”며 “강원도 사투리가 맛깔스럽게 구사된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이나 동네를 배경으로 한 조정래의 태백산맥, 최명희의 혼불, 박경리의 토지 등의 유명 문학작품도 지역성을 고유한 매력으로 발전시켰다”고 설명했다.

지역어의 가치에 대해 박 교수는 “부산사람이 부산말을 안 쓰면 ‘부산사람 맞나’고 할 것이다. 반대로 타지사람이라도 부산말 자유자재로 쓰면 ‘부산사람 다 됐네’라고 한다”며 “지역어가 없으면 그 지역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사람이 다 다르듯 그 지역의 얼이 담겨있는 고유한 정체성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지난 1월까지 3개월간 초·중·고·대학생, 성인 등 모두 302명을 대상으로 진주 지역어의 기초 조사와 서면 조사를 한 바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진주의 대표적 지역어인 ‘진짜, 정말’을 뜻하는 ‘에나’의 경우 초등학생은 80% 이상, 중학생은 60% 이상이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바르게, 똑바로, 열심히’를 뜻하는 ‘단디’는 ‘알고는 있지만 잘 쓰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연히’를 뜻하는 ‘배끼’와 ‘겨우, 빠듯이’를 뜻하는 ‘보도시’도 소멸 직전에 있다. 초·중·고 학생은 10% 미만으로 사용한다고 답했으며, 대학생과 성인도 그 수치가 20%를 넘지 않았다.

남아있는 지역어에 대해 박 교수는 “가위를 뜻하는 가새나 여우를 뜻하는 여시와 같은 말은 15세기부터 쓴 반치음 ㅿ이 남아 있는 말”이라며 “지역에서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 썼는데 중앙어에서는 변화를 입었다. 사투리는 중앙어의 변종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중앙어가 오히려 변종인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현재 진주 지역 학교에서 지역어 교육을 위한 교재는 따로 없다. 학교 교육에서는 지난 1997년에 고시된 7차 교육과정 이후로 국어 교과서에 지역어 항목이 있을 뿐이다. 이는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학생들은 지역어를 사용하면서도 자기가 쓰고 있는 말의 특징에 대한 교육은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지난 2005년 ‘국어기본법’을 제정한 바 있고 제주도는 지난 2007년에 ‘제주어 보전·육성 조례’를 제정했다. 경남도에서는 지난 2013년 국어진흥조례를 제정한 바 있지만 ‘지역어’ 관련 항목은 없다. 진주시에서는 지난 2011년 8명의 의원이 ‘지역어 보존과 육성을 위한 조례안’을 제148회 시의회 임시회에 상정했지만 통과되지 않았다.

허정림 진주시의회 의원은 “중앙정부는 국어기본법 제4조의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에서 ‘국민의 국어능력 향상과 지역어 보전 등 국어의 발전과 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해 놨다”며 “시는 지난 2015년 ‘국어 진흥 조례’를 제정한 바 있지만, 여태껏 구체적인 실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허 의원은 “중앙정부는 지난 2017년 무형문화재 법을 개정하면서 ‘언어표현’을 무형문화재의 범주에 넣고 있다”며 “시는 지역어를 보전해야 하는 문화재라는 인식으로 지역어의 보전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지역 사람들이 지역어 사용을 부끄러워하는 사회 분위기는 문제가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박 교수는 “우리 지역에서 나서 공부하고 성장하는 지금 세대들에게 지역어가 ‘선물’이 될지 ‘장애’가 될지는 지역민들이 문화 자긍심을 얼마나 가지느냐에 달려 있다”며 “후속 세대들이 지역을 외면하면 지역의 미래는 없으며, 학생들이 지역어 사용을 부끄러워한다면 그것은 교육과 행정의 실패다. 진주도 늦기 전에 ‘지역어 부흥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해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우리 선조들을 천황의 신민으로 만든다는 황민화 정책을 펼치며 문화의 근간이 되는 우리의 말과 글을 말살하려 했다.

‘말은 정신이요, 글은 생명입니다’라는 말이 있다. 일제가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말 교육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던 무렵, 조선어학회가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걸고 외쳤던 말이다. 이들은 각 지역의 사투리를 수집하며 하나의 표준어를 정하기까지 무려 13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사전 편찬 작업을 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어학회 33인은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는 일이라는 신념으로 삶을 바쳤다. 선열들은 문화 말살 정책아래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감옥 생활동안 모진 고문을 받으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처럼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스러져간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말과 글은 없었을 것이다.

줄임말, 외래어, 신조어 사용이 많아 세대 간의 소통이 힘든 요즘, 한 번쯤 우리 고유한 언어의 소중함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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