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고사부리성-백제 시대 축성 성벽 노출 모습(서-동)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19.5.1
정읍 고사부리성-백제 시대 축성 성벽 노출 모습(서-동)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19.5.1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정읍 ‘정읍 고사부리성(古沙夫里城, 사적 제494호)’에서 시대별로 다른 축성방식이 확인됐다.

1일 문화재청(청장 정재숙)과 정읍시(시장 유진섭), (재)전라문화유산연구원(원장 천선행)에 따르면, ‘정읍 고사부리성’은 백제 때 지방 통치의 중심인 오방성(五方城) 중 하나인 중방성(中方城)으로 사용된 이후 1765년(영조 41년)까지 읍성으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던 곳이다.

이번 조사는 남문지 동쪽구간에 대한 성벽과 수구시설을 확인하기 위한 발굴로, 지난해 10월부터 조사를 시작해 오는 5월까지 조사를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확인한 사항은 백제 때 처음 축조한 이후 통일신라와 고려, 조선 시대를 거치며 3차례에 걸쳐 수리한 양상, 성벽 축조방법, 수구(배수와 관련된 통로모양 시설) 등이다.

정읍 고사부리성은 백제 시대에 협축(夾築:성을 쌓을 때, 외벽과 내벽을 쌓고 중간에 흙이나 돌을 넣어 채우는 것) 기법으로 쌓은 석축산성으로 조사구역 내 성벽 규모는 길이 45m, 잔존 높이 3.5m, 최대 폭 5.4m이다.

성벽은 성돌을 약 3~5㎝정도씩 안쪽으로 쌓아올리는 퇴물림기법, ‘品(품)’자 형태의 바른층 쌓기(동일한 간격으로 돌을 면 높이가 일정하도록 돌을 쌓는 방식) 등을 이용해 축조했다. 또한 성돌(성을 쌓는데 사용하는 돌)을 굴곡이 지게 다듬어 결합하는 그렝이기법(서로 다른 모양의 건축부재를 서로 맞대어 면을 맞추는 공법) 등도 사용했다. 성벽은 3~4개의 구간으로 나눈 후 외벽과 내벽 사이에 다듬은 돌을 채워 완성했다.

이후 통일신라 시대에 수리해 다시 축조했는데, 전반적으로는 백제 시대에 쌓았던 석성축조 전통을 유지했고, 추가적으로는 성내 물 배출을 위한 수구시설 2기를 성곽 일부를 파내어 조성했다. 성벽 외측의 보완시설과 기둥구멍 등은 이번 발굴조사에서 새로 확인했으며, 고려와 조선 시대로 가면서 개축 과정에서 이미 있던 성벽을 토성으로 변형시켜 나간 사실도 확인했다.

정읍 고사부리성의 백제 성벽은 성돌을 매우 정교하게 다듬고, 견고함과 안정성을 극대화하는 축성방법이 총동원돼 축조됐을 뿐 아니라 백제에서 조선 시대까지 이어지며 장기간 이용한 성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이는 고사부리성이 백제 때 지방통치의 핵심적인 치소(治所: 어떤 지역에서 행정 사무를 맡아보는 기관이 있는 곳)성으로 조성된 이래, 지리적·전략적 중심지로서 중요하게 다루어졌음을 말해준다.

한편 고사부리성의 축성기법 가운데는 고구려와 유사한 ‘육합쌓기’ 방식이 일부 확인됐고, 다리가 3개 달린 토기, 항아리, 접시, 병 등 다량의 백제 토기와 기와, 고구려계 토기로 알려진 암문(暗文)토기가 출토됐다. 이러한 성과는 앞으로 고사부리성의 복원·정비 사업에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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