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형제의 진상극을 그린 블랙코미디 ‘트루웨스트’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장은진 기자] “나도 화분에 물 줄 줄 안다고!!!! 난 내 방식대로 해. 난 자유인이야. 프~리~덤(freedom).”

제대로 된 진상 한 번 보고 싶다면 ‘트루웨스트’를 주저 없이 추천한다. 오만석·정진석, 배성우·홍경인 주연으로 지난달 26일 막이 오른 연극을 보는 당신은 아마도 묘하게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스스로를 발견할 것이다.

일류라 하는 아이비리그 출신의 성공한 패밀리맨 동생 오스틴, 할리우드 영화 작가인 그는 알래스카로 휴가를 떠난 어머니의 집에서 잠시 새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고요하고 한적한 귀뚜라미 소리가 잘 들리는 집에서.

몇 년 간 사막에서 방랑하며 소식이 없던 형 ‘리’가 갑작스럽게 나타나 겉으로 보기에 너무 다른 형제의 동거가 시작된다.

오스틴의 공동작업자 영화프로듀서 ‘사울’과 골프 내기에서 단번에 이긴 리. 형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서부극 시나리오가 채택되자 오스틴의 프로젝트는 무산된다. 동생은 형의 프로젝트에 동참하게 되고 두 사람은 사사건건 부딪치지 않고 넘어가는 법이 없다. 진상에 진상을 거듭하는 형. 그러나 형에 진상에 진상을 더해 가는 동생….

동생 오스틴의 반격은 어찌 보면 통쾌하고도 유쾌하다.

유연수 연출가는 똑 같은 건물, 골목길, 사람들 속에서 방향 감각을 상실한 현대인에게 불편한 진실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소박한 시대에 대한 갈망과 향수, 절망에 빠져 있는 세상 속에서 구해줄 구원의 빛은 존재하는가? 우리에게 진정한 웨스트(West) 다시 말해 서부가 존재하는가,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가? 돌아가야 할 곳은 서부가 아니라 이미 맞고 있는 현실이 아닐까. 서쪽의 빛이 동방을 향해 오고 있고, 이미 온 것은 아닌가.

결국 오스틴은 형의 목을 졸라 죽이려 들고 알래스카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피카소를 만나러 일찍 돌아왔다며 무미건조하게 바라보다 사라진다. 어딘가 이상한 형제와 그 어머니. 등장인물 구성은 많지 않지만 이들의 감정선은 꽤 볼만하다.

어머니 역 연기자는 여자 배우가 아니다. 영화프로듀서와 어머니를 1인 2역으로 소화해 낸다. 만약 여자 배우가 등장한다면 아마도 극의 본질에 충실할 수 없을 듯하다. 1인 2역 연기도 이번 연극의 쏠쏠한 묘미다.

천재작가 샘 셰퍼드作 트루웨스트의 국내 최초 정식 라이센스 공연이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지난 2003년 영국 프로덕션 공연에서 혹시 모를 부상을 대비해 앞좌석 3열을 비워두고 공연했을 정도로 대립과 싸움은 치열하고 광적이다.

내면의 원초적 본능과 폭력성 그리고 분열된 자아와 잃어버린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이번 연극에선 타자기, 골프채, 부엌 식기를 실제로 부순다.

리허설에서 꽃병이 이마로 떨어져 15바늘을 꿰맸다는 배성우. 배성우·홍경인 오만석·정진석 김태향·김동호·이율 세 팀의 공연을 모두 보고 싶을 정도로 배우들의 연기엔 힘이 있다. 내년 2월 27일까지 신규 공연장 컬처스페이스 엔유에서 블랙 코미디의 향연을 만나볼 수 있다.

▲ 오만석과 정진석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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