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량 작가

외규장각은 알려진 바와 같이 1866년 병인양요 때 로즈 제독이 이끈 프랑스 군이 흥선 대원군의 가톨릭 박해를 빌미로 강화도를 침범, 철군하면서 탈취한 조선시대 풍습을 묘사한 문서이다. 당시 나폴레옹 3세가 이끌던 프랑스는 문화재 약탈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로즈 제독은 패배한 군을 이끌고 빈손으로 갈 수 없었던 나머지 외규장각에 있던 약 5천 여점의 장서가 실린 의궤를 싣고 프랑스로 향했다. 그러나 프랑스로 돌아가는 항해길에 의궤를 열어본 프랑스군은 금은보화가 아니라 장서들로 가득 찬 것을 발견하자 분노에 찬 나머지 대부분의 문서가 포함된 의궤를 바다에 던져 버렸다고 전해진다.

그 중 약 300여 점의 문서가 남아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보관되어있는 것을 1979년 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재불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가 발견하였다. 박병선 박사는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군이 외규장각 장서를 약탈해 간 역사의 뒷자취를 밟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취직한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세계 최고 금속 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도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 발견한 장본인이다. 박병선 박사는 외규장각 장서를 발견한 이후 도서관에서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입장이 되어 1980년 도서관을 그만 두었다. 평생을 외규장각 장서 연구에 바친 그는 현재 암 선고를 받고 치료중이다.

프랑스는 1993년, 고속전철 테제베를 한국이 모델로 삼는 대신 외규장각 장서의 반환을 약속했다. 문제는 그 약속이라는 것이 어떤 문서로도 공식화되지 않았었다는 것이다. 결국 프랑스 테제베는 한국의 카텍스로 변신한 지 오래지만 외규장각 장서는 아직도 프랑스 땅에 묶여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무엇보다 박병선 박사가 직접 외규장각 문서를 찾았던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강경한 반환 반대 입장 때문이다. 지난 G20 정상회담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은 외규장각 장서의 갱신 가능한 한시적 대여 형식을 합의했지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는 여전히 그 합의의 효력을 거부하고 있다. 도서관 사서들과 학예연구원들, 관장 등으로 구성된 ‘도서 반환 반대 성명서’에 등록한 프랑스인들은 475명으로 늘어났는데, 그에 반항하여 ‘장서 반환 지지협회’의 활동 또한 눈여겨 볼 일이다. 파리-디드로 대학 교수 벵상 베르제(Vincent Berger) 씨와 파리 8대학 학장 장 루 살즈만(Jean-Loup Salzmann), 그리고 전 교육부 장관이었던 자크 랑(Jack Lang)은 일간 르몽드지에 ‘외규장각 도서를 돌려줄 때가 되었다’며 공동으로 성명을 발표하였다.

장서 반환 지지협회는 반환의 이유로 ‘외규장각 도서의 특이성’을 강조한다. 즉, 외규장각 문서는 프랑스가 현재까지 약탈한 문화재와는 거리가 멀고, 유네스코 문화재도 아니며, 오로지 한국의 문화재로서 한국의 역사와 정신문화에 매우 중요한 문서이기에 반환할 타당성이 합당하다고 주장한다. 외규장각 문서 반환에 관하여 프랑스 네티즌들의 반응도 흥미롭다. 알린 알릭스(Aline Alix)라는 닉네임의 네티즌은 ‘약탈한 타국의 문화재는 돌려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나는 프랑스인이지만 약탈을 일삼은 서구의 역사가 자랑스럽지 않고 반환 반대 서명을 하는 도서-박물관 관계자들을 솔직히 이해할 수가 없다. 남의 나라 역사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서 자기것인 양 내세우는 태도는 이제 저지되어야 한다. 한국에 카피가 있다고? 그러면 원본은 돌려주고 카피를 받으면 되는 일이지 왜 카피를 한다고 시간과 예산을 낭비하는 것일까’라는 댓글을 달았으며 그 외 네티즌들 또한 ‘훔쳐온 것은 돌려줘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다. ‘예술작품은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소유해야 한다’고 한 어떤 네티즌의 댓글은 여운을 남긴다. 그 아래에 FG000이라는 닉네임의 다음과 같은 댓글이 가시처럼 와 닿는다. ‘서구문화에 중요하지 않는 문서를 왜 부득이 지키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동양 작은 나라의 도서가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다고 이 난리일까. 우리에게 중요한 문화재를 알리고 보존하는 데 더 신중을 기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반환반대에 서명한 도서-박물관 관계자들의 진심이 궁금하다. 그들은 정말 우리의 외규장각 문서를 너무너무 사랑해서일까? 하여 우리 문화재를 자신들의 문화재인 양 착각하기 때문일까? 그들의 태도를 관찰하자니 뺏긴 사람이 바보라고 말하는 도둑의 뻔뻔한 심보가 떠오르기도 한다. 비하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들은 나폴레옹 제국주의 유산의 수호자들이다. 루브르박물관의 90퍼센트가 약탈 문화재라는 것을 그들이 간과할 리가 없다. 루브르박물관은 국가재정 기관이 시샘을 낼 정도로 해마다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프랑스의 보물단지이다. 루브르뿐 아니라 프랑스에서 문화재는 부의 핵심이며 수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 진정 약탈한 문화재를 사랑해서인지, 아니면 외규장각 문서 반환을 계기로 각 나라에서 문화재를 돌려달라고 할까봐, 하여 그네들의 밥줄이 끊길까 봐 지레 겁을 먹고 그러는 것인지. 그네들의 진심은 무엇일까. 가장 프랑스적인 대답은 바로 그 두 가지 모두가 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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