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 모양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는 것인데 흥미로운 것은 거짓말의 종류가 인종이나 문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개 비슷하다는 것이다.

최근 20세기 폭스가 TV시리즈 <내게 거짓말을 해봐(Lie to Me)> DVD판을 내면서 영국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했더니, 남녀 가릴 것 없이 “아무 일 없어, 난 괜찮아”라는 거짓말을 가장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자들은 여성에게 “당신 정말 뚱뚱하지 않아”라는 거짓말을 자주하고, “이 잔이 마지막이야”라는 거짓말도 많이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자들은 대개 자신의 몸매에 엄청 신경을 많이 쓰고 있으며 남성들은 “날씬하다”는 말의 위력을 잘 알고 있다는 증거다. 또 코 큰 친구들도 “이 잔이 마지막”이라며 술잔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우리들과 참 많이 닮았다. 또 “핸드폰 벨이 안 울렸다” “핸드폰 배터리가 나갔다” “다른 일 때문에 전화를 못 받았다”라며 거짓으로 둘러대는 남자들도 많았고 “지금 가고 있다”거나 “길이 막혔다”라는 거짓말도 자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남자들이란 참.

여성들의 거짓말 성향도 서양이나 우리나 큰 차이가 없다. 영국 여성들도 쇼핑에 관한 거짓말을 많이 한다는 것인데, “새로 산 거 아니야” “안 비싼 거야” “세일 상품이야” 따위의 거짓말이 그것이다. 여성들이란 참.

남녀 가리지 않고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이 거의 입에 달고 다니는 거짓말이 있다.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라는 것이다. 속으로는 “저런 인간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하면서도 상대의 면전에선 억지웃음을 짓는 것이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배운다. 어른들은 양치기 소년 이야기 등을 들려주면서 거짓말이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 알려 주려 애쓴다. 그래서 사소한 거짓말을 하고서도 가슴이 콩닥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어린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오히려 두뇌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거짓말을 통해 주어진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요령을 배우고 뇌를 왕성하게 움직여 발달시킨다는 것이다. 때문에 어린 아이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라며 마구 화를 내거나 혼을 내서는 안 될 일이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게 되면 “아이 두뇌가 엄청 발달하고 있구나!” 하고 한 번 웃어 주는 게 옳다.

거짓말 중에서도 선의의 거짓말은 하얀 거짓말이라고 해서 많이 할수록 좋다. 아이가 공부를 좀 못해도 “야, 우리 아무개는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좋아” 하거나, 하다못해 “너는 매운 김치를 잘 먹으니 참 멋있구나”라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해 줘도 아이는 세상 다 얻은 듯 기운을 낸다. 남편이 돈을 잘 못 번다고 “아이고 이 화상아, 뭘 제대로 하니” 하고 타박을 할 게 아니라 “그래도 당신 힘 하나는 끝내줘”라고 엉덩이를 툭툭 쳐주면 남자는 목숨을 걸고 일터로 달려 나간다. 아내가 좀 못났더라도 “내 눈에는 당신이 미스코리아야”라고 말해 주면 여자 입에서 콧노래가 절로 쏟아진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했다. 천 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말만 잘 하면 큰 고난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말일 것이다. 꼭 빚 갚을 일이 아니어도, 들을수록 힘이 나고 행복해지는 하얀 거짓말을 많이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올해가 다 가기 전에 소중한 사람들에게 꼭 해 주어야 할 예쁜 거짓말이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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