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비록 미국에서 벌어졌지만 결코 남의 일 같지 않다. 꽃다운 나이인 23세의 여자 사이클 미국 국가대표 선수가 허망하게 목숨을 끊은 소식에 미국 사회가 큰 충격에 빠졌다. 2020 도쿄 올림픽 금메달 유망주로 꼽혔고, 미국 서부의 ‘하버드’로 불린 스탠포드 대학원에 재학 중인 재원이라 안타까움은 더욱 컸다. 미래의 ‘영광’이 운명처럼 찾아오는 대신에 죽음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스포츠면에 3번이나 세계선수권을 차지했던 켈리 캐트린이 지난 3월 중순 재학 중인 스탠포드 대학원 기숙사에서 가스 중독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며 자살 동기와 주변 상황 등을 상세히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성공 스트레스, 완벽주의, 과도한 훈련, 부상과 우울증 등을 자살의 복합적인 요인으로 꼽았다.

스탠포드 대학원 컴퓨터 수학과 1학년생이던 그녀는 죽기 수개월 전부터 학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지난 1월 가족과 코치, 친구 등에게 보낸 e메일에서 그녀는 “끝없이 돌고 돈다. 절대 쉴 수가 없고 결코 평화롭지도 않다”며 음울한 마음 상태를 밝혔다. 하지만 그녀는 별도의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 “그것은 스스로 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거부하면서도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닌 상황으로 내몰리는 모습을 걱정한다고 말했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여자단체추발 은메달을 획득했던 미국팀의 일원이었던 그녀는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뒤 은퇴하고 실리콘밸리에서 컴퓨터 분야 직업을 가질 예정이었다. 점수 지상주의와 컴퓨터 숫자공부에 몰입하던 전도 양양하던 그녀에게 갑자기 위기가 찾아온 것은 지난 1월 5일 훈련 중 넘어져 뇌진탕 증세를 보이면서였다. 머리 부상으로 인해 정신과 행동에 변화가 생겨 한 번의 자살 미수시도 다음에 끝내 목숨을 끊은 것으로 의료진들은 진단하고 있다.

병리학자인 아버지와 치매전문가인 어머니를 둔 캐트린은 “충분히 노력한다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잘 할 수 있다고 부모님이 항상 말씀하셨다”며 최고가 아니면 아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완벽주의자로 성장했다. 그녀가 초등학생 때 덧셈이나 뺄셈을 잘 하지 못하고 좌절감에 빠져 몇 시간동안 소리를 질렀던 적이 있어 사회적 적응을 걱정한 부모의 권유로 승마를 시작했다고 한다. 공부와 운동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소질을 발휘한 그녀는 고교생활을 하면서 사이클을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했다. 집중력 배양과 숫자 암기에 효과가 있다며 사이클을 열심히 하면서 그는 지역팀에서부터 두각을 보였으며 2년여만에 미국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돼 승승장구했다.

캐트린의 죽음은 성적순으로 내모는 사회적, 가정적 환경이 어떤 인간의 모습을 낳게 하는 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성적 지상주의, 승리 지상주의 등은 승부에만 집착하게 하는 선수를 양산할 뿐이다. 스포츠의 참다운 의미를 깨닫기 보다 남을 밀어내고 자신의 성공만을 추구하는 이들을 최고로 받든다. 이런 분위기로 치우치면 스포츠의 목적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한국 스포츠는 승리 지상주의 폐해가 미국보다 훨씬 심하다고 본다. 경쟁의 대열에서 탈락한 선수와 학부모, 코칭스태프들의 좌절과 죽음을 자주 보게되는 것은 한국스포츠의 단면이다. 비록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세상이 꼭 성공과 실패 두 가지로만 구성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올림픽은 핑계였던 것 같다. 메달을 떠나 스케이트 선수로서 행복했다”는 아름다운 은퇴사를 했던 스피드스케이팅의 이규혁의 오래전 말이 귓가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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