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달 말 정상회담을 한다고 러시아 크렘린궁이 발표했다. 두 정상의 첫 대면이고, 북-러 정상회담은 2011년 이후 8년 만이다. 회담은 24, 25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릴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때처럼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를 다녀오려면 최소한 두 주일이 소비된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릴 경우 비행기로는 약 1시간 반, 열차로 달려도 반나절이면 충분히 도착하는 거리여서 푸틴 대통령이 북한에 크게 양보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계산’을 따져보자. 신동방정책을 추구하는 푸틴의 경우 시베리아 개발 등 러시아 동부를 개발하는데 북한의 노동력이 필수적이다. 한 때 북한과 러시아는 시베리아 개발에 감축된 북한 군인 30만 명을 내보내도록 합의하였으나 성공에 다다르지 못했다. 물론 오늘도 그 여건은 충족되지 못하고 있지만 적어도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 사이에 합의만 도출해도 향후 비핵화 문제가 잘 풀린다면 순조롭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또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톡 항구 외에 북한의 라진항 등을 활용할 수 있다면 일본 등과의 교역에서 유리한 환경을 차지할 수 있다.  특히 러시아는 북한 철도와 가스관 건설 등을 통해 동방으로 다가가는 통로를 마련하는데 북한의 지리적 조건을 이용한다면 이 문제는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의제가 있다. 이번 의제 중 당면한 것으로 대북 지원과 러시아에 체류 중인 북한 노동자 1만여 명의 송환 문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인 북한 노동자들이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라 올해 말 전원 귀국하게 되면 북한 경제가 흔들릴 수 있다. 김정은이 러시아에 손을 내민 배경엔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 공조 전선을 무력화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러시아를 뒷배로 내세워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는 얘기다. 김정은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도 함께 가자는 친선 메시지를 보냈다. 중-러와 사회주의 연대를 통해 국제제재 파고를 헤쳐 나가면서 대미 협상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전략이다. 

북-러 정상회담이 임박하자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곧바로 모스크바를 방문해 대북제재 공조를 당부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남의 나라 일인 듯 지켜만 보고 있으며 미국과는 비핵화 해법을 놓고 엇박자를 내고 있다. 미일 동맹이 밀월 수준으로 진전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은 한국에 장벽을 친 최신예 F-35 스텔스 전투기의 설계기밀 정보 등을 일본에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일본에 이런 특혜를 제공하려는 것은 한미동맹과 크게 달라진 미일동맹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요동치는 동북아 정세에 대처하기 위해선 미일동맹 강화가 절실하다는 일본의 의도가 먹혀든 것이다. 동북아 외교전이 치열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불투명한 남북관계에만 매달려 끊임없이 경협 우회로를 모색하고 있다. 미국 조야(朝野)에선 한미동맹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일본과는 최악의 관계다. 한미동맹의 내상(內傷)이 깊어지면 군사 안보 이외에 경제 등 다른 영역까지 여파가 미칠 수 있다. 북한이 중-러와 밀착하는 비상한 상황에서 한미동맹의 빈틈을 보여선 안 된다. 방심하면 치열한 외교전에서 ‘코리아 패싱’이 재연될 수 있다. 북한과 러시아의 접근은 자칫 일본에게 북한의 시장을 빼앗기는 결과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본은 1992년 북한이 라진 선봉 지역을 개방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뛰어든 나라다. 그만큼 일본은 북한 경제개발 시장에 욕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라진 선봉지구 항구가 개방되고 러시아 선박이 진을 친다면 그 교역 상대는 일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남북관계의 실질적 발전에 더욱 매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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