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문화칼럼] 노트르담 성당 화재의 교훈
[이재준 문화칼럼] 노트르담 성당 화재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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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파리를 찾는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던 노트르담 성당이 화재로 무너졌다. 성당이 불에 타는 순간 눈물을 흘리는 소녀들, 무릎을 꿇고 불이 멈추기를 간절히 바라는 파리지앵들의 모습에서 세계적 건축물을 잃은 슬픔을 실감할 수 있다. 외신은 ‘프랑스는 역사의 일부이자 보석을 잃어버렸다’고 보도했다.

화재 때 파리 소방당국의 대응은 민첩했다. 단시간 내에 불길을 잡기 어려웠던 건 성당 지붕을 지탱하고 있는 목조기둥과 돌로 된 외관, 하늘로 높이 치솟은 고딕 양식 때문이었다고 한다. 소방관들의 혼신어린 사투로 다행히 성당의 중요한 부분은 소실되지 않았다. 파리시 소방청은 트위터에는 ‘9시간 넘는 격렬한 전투 끝에 화재가 끝났다’며 ‘경찰관과 소방관 2명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시민들은 소방차가 지나가는 순간 박수를 보냈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노력에 찬사를 보냈다. 마크롱 프랑스대통령은 ‘지금은 슬프지만 성당의 본래 모습대로 복원 하겠다’고 발표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빅토르 위고가 1831년에 쓴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로 유명하다. 성당의 종지기 쿠아시모도와 집시 처녀 에스메랄다로마의 비련을 그린 작품이다. 프랑스 혁명기 가장 천대 받는 남녀의 진정한 사랑을 그려 감명을 준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헐리웃 명배우 앤소니 퀸이 꼽추역을 맡은 영화가 제작돼 한국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것은 꼽추로 분장 한 앤소니퀸의 명 연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는 아름다운 노트르담 성당의 모습이 세밀하게 투영되기도 했다.  

가톨릭 성당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파리의 랜드 마크로서 연간 천 6백만명이 방문하고 있다. 착공해 완공까지 182년이나 걸린 장엄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이 건물의 착공된 시기는 우리나라로서는 고려 중기에 해당되며 완공 시기는 고려 말기다. 파리는 노트르담 성당을 지은 시기였지만 우리는 가장 자랑할 만한 목조건축 황룡사 9층탑을 잃었다. 자연 화재가 아닌 몽골의 침입으로 인한 소실이었다. 

이번 노트르담 성당에서도 드러났듯이 돔을 떠받치고 있던 기둥이 목재여서 불이 확산 된 것이다. 기둥은 12세기 처음 축조 당시 사용된 건축자재였던 모양이다. 목재는 불에 가장 취약하다. 한국의 경우 고려 이전의 백제, 신라 건축물이 전무한 것은 목재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고려사나 조선 왕조실록 주요 사건 가운데 유독 궁중의 화재 기록이 많이 차지한다. 

고려사를 보면 전 왕조에 걸쳐 화재를 건너 뛴 사례가 없다. 80여년이나 걸려 마무리 한 황룡사 목탑의 경우 고려 시대만 5차례나 수난을 당했다. 대부분 벼락으로 인한 화재였다. 고려는 수차례나 국력을 기울여 목탑을 중건했지만 몽고군이 불 태운 이후로는 복원하지 못했다. 작년 이맘 때 중국 쓰촨성에 있는 최고의 불교 목탑 영관루(靈官樓)가 불에 타 소실됐다. 영관루는 명나라 말기 1600년대 초반에 건립된 16층 높이의 목탑이다. 중국 정부가 아시아 최고 높이라고 자랑해 온 문화유산이었다. 그런데 지난 2008년 쓰촨대지진 당시 크게 파손된 것을 8년 전에 중건 한 것이었다.  

한국의 중요 건축물 문화재는 대부분 목조로 지어졌다. 4월은 날씨가 건조해 불이 자주 발생한다. 2008년도 국보 제1호 남대문 화재의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노트르담의 화재에서 보여준 파리정부, 소방관, 언론의 일사불란한 대응은 ‘역시 프랑스’라는 격려가 쏟아진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즐거운 도시 파리의 지혜를 우리 서울시도 배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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