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낙태죄 헌법 위헌 여부 선고가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주재로 열리고 있다. 이날 헌재는 지난 1953년 낙태죄 조항을 도입한 지 66년 만에 ‘헌법불합치 선고’를 내렸다. ⓒ천지일보 2019.4.1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낙태죄 헌법 위헌 여부 선고가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주재로 열리고 있다. 이날 헌재는 지난 1953년 낙태죄 조항을 도입한 지 66년 만에 ‘헌법불합치 선고’를 내렸다. ⓒ천지일보 2019.4.11

보수 성향 조용호·서기석 퇴임

진보 성향 이미선·문형배 취임

재판관 9명 중 6명 ‘진보’ 분류

사형제·군동성애처벌 결정 주목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보수 성향의 조용호·서기석 헌법재판관의 퇴임과 맞물려 문재인 대통령이 이미선·문형배 재판관 임명을 강행했다. 헌법재판소 9인 체제는 갖췄지만, 새 재판관이 모두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면서 헌재 저울의 추가 더 ‘왼쪽’으로 기울었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은 19일 해외순방 일정으로 방문한 우즈베키스탄에서 전자결재로 두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을 재가했다.

재판관 후보자들의 임명이 완료되기까진 진통이 있었다. 이미선 신임 재판관의 주식 보유를 놓고 논란이 커지면서 여야는 연일 강대 강 충돌을 벌였다. 결국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은 물 건너갔고, 문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하고 말았다.

이로써 재판관 퇴임으로 인한 공백 없이 재판관 9인 체제는 그대로 유지됐다. 다만 헌재의 ‘진보’ 색채는 더욱 뚜렷해졌다는 분석이다.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조·서 두 재판관은 보수 성향으로 평가받는 반면, 새로 취임한 이·문 두 재판관은 진보 스펙트럼을 띄고 있다고 평가받는 까닭이다.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서기석(왼쪽), 조용호 헌법재판관이 1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4.18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서기석(왼쪽), 조용호 헌법재판관이 1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4.18

조·서 두 재판관 모두 박 전 대통령이 임명했다. 실제 각 사안 결정에서도 여러 차례 보수 성향을 내비쳤다. 다만 최근 낙태죄 처벌 조항의 위헌 여부를 두고선 의견을 달리했다. 조 재판관은 낙태죄가 합헌이라고 봤지만, 서 재판관은 헌법불합치 편에 섰다.

양심적 병역거부 심판에서도 서 재판관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지 않은 것을 위헌으로 본 반면, 조 대판관은 병역기피자의 급격한 증가를 우려하며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을 합헌으로 판단했다.

2013년 나란히 박 전 대통령 추천으로 재판관 임기를 시작한 두 사람은 지난 2017년 임명권자 박 전 대통령을 본인들의 손으로 탄핵하는 얄궂은 운명을 맞기도 했다. 애초 두 재판관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박 전 대통령 탄핵은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두 재판관 모두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조·서 재판관이 떠난 빈자리를 매우는 이·문 신임 재판관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문 재판관은 진보성향을 가진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이다.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인 이 재판관은 노동법 전문가로 평소 노동자 권리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전해졌다.

[천지일보=안현준 기자] 이미선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4.10
[천지일보=안현준 기자] 이미선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4.10

헌재 내엔 이미 진보성향 재판관들이 많이 포진해 있다. 문 대통령이 지명한 유남석 헌재소장은 우리법연구회 창립멤버다. 이석태·김기영·이은애 재판관도 진보성향으로 평가받는다. 이석태·이은애 재판관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김기영 재판관은 더불어민주당이 지명했다.

바른미래당이 지명한 이영진 재판관은 중도성향,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명해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대통령권한대행 시절 임명한 이선애 재판관은 보수 혹은 중도성향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한국당이 추천한 이종석 재판관만이 명확한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이로써 헌재는 진보 4 보수 3 중도 2의 구도에서 진보 6 보수 1 중도 2의 구도로 재편된다. 추가 ‘왼쪽’으로 기울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헌법재판관 총 9명 중 8명이 문재인 정부 아래서 임명됐다. 이들의 임기는 6년을 모두 채운 2023년 이후 끝난다. 당분간은 진보적·전향적 결정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천지일보=안현준 기자] 문형배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천지일보 2019.4.9
[천지일보=안현준 기자] 문형배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천지일보 2019.4.9

헌재 역사상 여성 재판관이 처음으로 3명이 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미 낙태죄 위헌 결정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많은 힘을 실어준 것처럼 앞으로도 여권 향상에 기여할 결정이 더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에 따라 지난 2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제기한 사형제 폐지 헌법소원과 군 동성애 처벌 관련 심판 등 굵직한 사안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그 결과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형제 폐지 등의 결론이 잇따라 나올 경우 헌재 6기는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길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미선 재판관은 청문회에서 사형제를 비롯해 동성애와 성소수자에 대한 견해 등에 관련한 질문에서 대부분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에 반드시 진보적인 결정을 내린다고 예단하기엔 섣부르다는 얘기도 나온다.

또 보수성향이 강하다고 평가된 헌재 5기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만장일치로 결정한 점, 진보·중도 성향으로 분류된 재판관이 대거 취임한 노무현 정부 시절 사형제와 군 동성애 처벌 사안에 대해 모두 합헌 결정이 내려진 점 등 단순히 이념적 성향으로 헌재 결정을 예측하는 건 게으르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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