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속으로] 타이거 우즈와 밴드웨건 효과
[스포츠 속으로] 타이거 우즈와 밴드웨건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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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1990년대 중반, 한국남자골프에서 ‘1인 천하’로 군림했던 최상호의 전성기 시절 얘기다. 당시 골프담당기자였던 필자는 어느 날 최상호가 헤드프로로 근무하던 남서울 CC에서 같이 라운딩을 했다. 코스를 돌며 그가 국내 프로무대를 독식할 수 있었던 비결을 들을 수 있었다. “매 대회때마다 더 잘하겠다는 욕심을 내지는 않는다. 연습 때나 경기 때나 보통 3~4언더파를 목표로 한다. 다른 선수들이 아무리 좋은 성적을 내더라도 내 목표만 달성하면 만족한다. 특히 대회 마지막 날 챔피언조에 내가 1위로 출발하지 않더라도 이 목표는 바꾸지 않는다. 나는 계획대로 가는데 챔피언조에서 같이 경쟁하는 다른 선수들이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말했던 것이 명료한 기억으로 남았다. KPGA 코리안투어 통산 43승으로 한국프로골프 사상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최상호는 시니어부문(만 50세 이상 참가)에서도 15승을 올렸고, 그랜드시니어부문에서는 10번째 우승을 수확했다. 최상호가 국내 골프서 좀처럼 깨기 힘든 대기록인 개인 통산 68승을 세울 수 있었던 데는 챔피언만의 노하우가 있었다.

2005년 이후 14년 만에 2019 마스터스 우승을 차지한 타이거 우즈를 보면서 최상호 얘기가 생각났던 것은 불세출의 챔피언들이 갖고 있는 남다른 정신력이 서로 비슷한 것 같기 때문이다. 파경, 도박, 약물복용 등의 개인적 비위행위로 한때 세인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던 그는 절호의 재기 기회를 맞았던 2019 마스터스에서 돌아온 챔피언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마지막 4라운드서 공동 2위로 출발했지만 선두와의 2타차를 좁히는데 극적으로 성공하며 더스틴 존슨 등 공동 2위 2명을 1타차로 제치고 감격적인 우승을 차지했던 것이다. 우즈가 4라운드를 선두로 출발하지 않았던 메이저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은 이번 마스터스 대회가 처음이다.

4라운드 경기서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우즈는 승부처인 마의 코스 ‘아멘 코너’ 11~13번홀에서 노련한 경험을 토대로 마음을 비우며 플레이를 펼쳤다. 12번홀에서 우즈는 경쟁자 프란체스코 몰리나리(이탈리아)에 2타 뒤진 상황이었지만 결코 무리를 하지 않았다. 이 홀에서 숱한 선수들이 무너졌던 것을 본 적이 있던 그는 이날도 바람 방향이 수시로 바뀌며 쉽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특히 앞 조에서 공이 물에 빠지는 것을 눈여겨 본 터였다. 이에 반해 선두 몰라나리와 토니 피나우(미국)의 안목과 여유는 우즈를 따라가지 못했다. 둘은 이 홀에서 오른쪽 가장자리에 꽂힌 핀을 직접 공략하다 볼이 그린 앞 개울 둔덕에 맞고 물에 빠져 더블보기를 기록했다. 반면에 우즈는 핀 보다 그린 안쪽을 공략해 안전하게 파를 잡았다. 공동선두로 기세가 오른 우즈는 13번홀에서 버디를 잡고 15번홀에서 버디를 추가하며 승기를 낚았다. 우즈가 4라운드 합계 13언더파를 기록, 매 라운드 평균 3언더파 안팎의 성적을 낸 것도 최상호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최상호와 우즈 같은 불세출의 챔피언들은 ‘꼭 이겨야겠다’는 것보다는 ‘자신의 욕심을 스스로 억제’하는 멘탈게임이 매우 뛰어난 선수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대중들은 지나친 승부욕에 사로잡혀 스스로 무너지는 선수들보다 자기 행동을 조절하는 스포츠 영웅들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밴드웨건(band wagon)’ 효과이다. 밴드웨건은 미국 서부 개척시대, 선두 마차를 따라서 수많은 마차들이 뒤따르는 모습에서 비롯됐는데, 스포츠에서는 선수들이 확실한 선두를 따라가다 처지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스포츠팬들은 최상호나 우즈와 같은 챔피언 뒤를 따라 다니며 승부의 세계에 대한 묘미를 즐기며 환호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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