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만난 국내 무라카미 하루키 전문가인 조주희 성신여자대학교 교양교육대학 겸임교수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4.17
지난 10일 만난 국내 무라카미 하루키 전문가인 조주희 성신여자대학교 교양교육대학 겸임교수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4.17

우리나라 무라카미 하루키 전문가

생존작가 연구 금기 깨고 국내 하루키 1호 박사로 우뚝

하루키 3음 콘서트 기획 나서… 강연·음악 등 통해 작품 음미

“번역시장 성장 정부 나서야”

[천지일보=박선아 기자] “무라카미 하루키를 아는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코웃음 칠지도 모른다. 그는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한명이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전 세계 40개 이상 언어로 50편이 넘는 작품을 펴내며 소설·번역물·에세이·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집필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6년부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돼 온 그의 대표작인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 1987)’는 하루키 신드롬을 일으키며 국내에서 200만부가 넘게 판매됐다. 이렇게 작품으로는 익숙한 하루키지만 작가 개인으로서는 문학 행사는 고사하고 언론 인터뷰도 잘 하지 않는 등 외부 접촉을 꺼리는 신비주의 작가로 알려졌다. 유독 한국과 중국에 야속한 하루키는 방한은커녕, 한국인이나 중국인과는 만나지도 않는다고 하니 의아해진다. 우리는 진짜 하루키를 알고 있나.

“우리나라에 하루키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어떤 작가인지는 잘 몰라요. 언뜻 승승장구했을 것 같지만 굴곡이 많은 작가입니다.”

지난 10일 무라카미 하루키 전문가인 조주희 성신여자대학교 교양교육대학 겸임교수를 만났다. 국내 하루키 1호 박사인 조 교수는, 본토인 일본에서도 문학박사를 학위 취득한 하루키 전문가다.

책을 좋아했던 조 교수는 문학작품을 통해 당시 시대 상황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끼고 일본 문학가의 길을 택하게 됐다. 조 교수가 박사를 준비할 시기에 우리나라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붐이 불었다. 그때 많은 하루키 소설을 접하며 조 교수는 하루키 연구를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2005년 당시 생존작가 연구는 금기시되고 있었다. 조 교수는 하루키의 영향력을 강조하며, 사후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고 학교 측을 설득했다. 마침 일본에서 하루키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던 점이 조 교수의 연구 허가를 도왔다. 이후 한국뿐 아니라 본토인 일본에서도 하루키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국내외에서 하루키 전문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하루키에게 인세를 가장 많이 주는 나라가 우리나라예요. ‘1Q84(문학동네, 2010)’부터 13억원이 넘었습니다. ‘노르웨이의 숲’이 전 세계에서 1100만부 팔렸는데 그 중 250만부가 국내에서 팔렸어요. 2명 중 1명은 읽었다고 볼 수 있죠. 다른 버전이 나올 때마다 구입하는 분도 계시거든요. 이런 우리나라를 오히려 세계는 신기하게 봅니다.”

그가 생각하는 하루키 작품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는 무국적성과 공감이 쉬운 부분을 꼽았다. 조 교수는 “초기 하루키 작품에는 이름이 없다. ‘나’ ‘너’ ‘쥐’ ‘양’ ‘귀 모델’ 등 대명사나 캐릭터로 인물들을 부른다”며 “장소를 설명할 때도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강변 마을이라고 표현하면 읽는 독자에 따라 그 장소는 한강 변이 될 수도 있고, 암스테르담이 될 수도 있어 공감이 쉽다”고 설명했다.

하루키 하면 언급되는 부분 중 하나는 노벨문학상이다. 하루키는 2006년 이후로 매해 노벨상 후보로 거론됐지만 번번이 고배를 들었다. 노벨문학상에 대한 언급이 불편한지 하루키 자신도 지난해 ‘기사단장 죽이기’ 출간을 앞두고 미국에서 열린 행사에서 자신에게 중요한 세 가지 중 하나를 “노벨문학상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루키의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에 대해 조 교수는 “받을 시기를 좀 놓쳤다고 생각한다”며 “노벨문학상은 시대성을 반영하기에 당시 이슈가 된 작가가 받는 경우가 많다. 또 하루키는 노벨상에서 꺼리는 다작 성향을 가지고 있어 더 힘들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받는다면 70살이자 데뷔 40주년을 맞는 올해가 마지막 수상 기회라고 본다. 노벨문학상 측이 하루키의 체면을 세워준다면 올해가 적기”라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하루키를 사랑하는 독자들이 작가를 이해함으로써 작품 감상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장으로 ‘무라카미 하루키 3음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3음 콘서트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음미’ ‘음악’ ‘음식’을 주제로 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10월 강남시어터에서 열린 ‘무라카미 하루 3음 콘서트-하루키 소설을 음미하다’ 행사에서는 조 교수와 허희 문학평론가가 나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하루키의 삶과 그의 작품에 대한 강연을 진행했다.

올해도 용인, 양평, 대구 지역에서 강연 행사를 계획 중이다. 또한 ‘음악’을 주제로 하루키의 작품을 이야기해보는 ‘북케스트라’도 기획 단계에 있다. 하루키의 작품에서 나오는 곡을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음미해보는 시간으로 꾸며지며 서울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하루키 연구와 함께 일본 문화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는 조 교수는 국내 번역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교수에 따르면 문학 번역은 단순히 언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소설을 번역가가 쓴다고도 볼 수 있다. 다양한 문체가 있듯 다양한 번역가가 필요하다는 거다.

그는 “안정성을 추구하다보니 번역이나 통역이 특정인들에게 편중된다. 그러면 같은 문체가 반복된다”며 “문학번역은 단순히 언어를 번역하는 게 아니라 소설을 다시 쓰는 것이다. 그 문체에 맞는 번역을 해줘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판권을 출판사가 갖고 있다 보니, 번역가 선임 권한이 출판사에 있어 번역시장이 커지기 어렵다”며 “정부가 번역협회를 세워 우리 작품의 판권을 사고, 여러 번역가들을 등록시켜 다양한 작품을 번역하게 된다면 좋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조주희 교수는 일본근현대문학을 전공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와 일본 간사이(關西)대학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로 문학박사를 학위 취득했다. 서경대학교, 한양여자대학교, 상명대학교에서 겸임교수를 지냈고 현재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의 연구교수, 성신여자대학교 교양교육대학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연구(2010, J&C, 2011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 공저로 ‘世界文学としての村上春樹(東京外國語大學出版會, 2015)’, 역서로는 ‘하루키, 하루키(2012)’가 있다. 현재 ‘무라카미 하루키 3음 콘서트’를 진행하며 일반인에게 일본문학을 소개하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하루키, 인생 70년, 데뷔 40년’을 기념한 평전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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