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석정, 즉 유상곡수연은 현재 곡수거(曲水渠)라고 하는 전복 모양의 돌홈과 섬돌 형태가 남아있다. (사진제공: 문화재청)


연회 아닌 제사 지낸 곳 추정… 추측 엇갈려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천년의 역사를 지닌 경주에는 잔치를 벌이다 목숨을 잃은 경애왕 이야기로 유명한 포석정이 있다.

포석정에 관련된 유명한 경애왕 이야기는 사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구려ㆍ신라ㆍ백제 삼국의 역사를 기록한 삼국사기에는 “임금이 비빈․종척과 더불어 포석정에 가서 잔치하며 즐겁게 놀던 때라 적병이 닥침을 알지 못하였다(王與妃嬪宗戚 遊鮑石亭宴娛 不覺賊兵至)”고 기록돼 있다.

포석정은 중국의 ‘유상곡수연’에서 유래됐다. 중국의 유상곡수연은 굴곡진 수로위에 물이 흐르게 하고 그 위에 술잔을 띄운 후 술잔이 자기 앞에 올 때 시를 한 수 읊는 놀이 문화다.

유상곡수연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흔했다고 알려졌으나, 현재 중국에서조차 흔적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경주 포석정이 유일하게 남은 유상곡수 문화재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포석정’이라고 하는 것은 <화랑세기>에 기록된 ‘포석사’라는 표현과 유물이 발견되면서 주변에 건물이 있었음을 짐작해 정자에서 따온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현재는 곡수거(曲水渠)라고 하는 마치 전복을 포(鮑)뜬 모양의 돌홈과 섬돌 형태가 남아있다.

포석정이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형태가 온전한 이유는 많은 보수를 거쳤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임의로 보수해 수로곡석(水路曲石)의 일부가 파손됐지만,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특이한 유수곡선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지난 KBS 다큐 <한국의 미> ‘신라의 정원’ 방송에서는 제작진이 계곡의 물을 끌어 올려 포석정에 흘려보낸 뒤 목기잔ㆍ토기표주박ㆍ토기잔에 술을 채워 띄운 결과, 물의 유속에 따라 차이가 있었지만 4분여 만에 무거운 잔 순으로 제자리에 도착했음이 밝혀졌다.

한편 포석정 주변 터에서 제사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제기류가 출토됐다. 이것으로 학계에서는 포석정이 연회를 즐기던 곳이 아니라 나라의 제사 의식을 거행하던 신성한 장소였다는 주장을 제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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