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초빙교수

16년 전 카타르의 경험은 정말 끔찍했다. 숨이 꽉꽉 막힐 것 같은 살인적인 더위, 철저히 통제되는 외국인의 행동거지, 사회주의식의 국가운영 때문이었다. 이런 나라에서 국제스포츠대회를 한다는 것 자체가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카타르는 풍부한 오일달러를 앞세워 모든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중동의 모범적인 스포츠 국가였다. 국제스포츠대회도 서방국가의 여느 나라 못지않게 잘 치러냈다.

1994년 9월 아시아주니어배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한국남자청소년 대표팀을 취재하기 위해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 도착했을 때 극동의 작은 나라 이방인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카타르는 나무 한 점 잘 보이지 않는 황갈색의 황량한 사막만이 눈에 띄었다.

울창한 나무숲으로 푸른 빛이 넘치는 한국과 너무나 달랐다. 실제로 카타르에서는 푸른 잔디가 없어 사막의 맨땅 위에 아스팔트에 사용되는 코울타르를 입혀 페어웨이를 만들고, 들고 다니는 매트 위에 볼을 올려놓고 치는 ‘사막골프’를 할 정도로 우리와는 자연적 여건이 너무나 달랐다.

가장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오후에는 섭씨 50도를 육박해 이런 더위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이 시내를 돌아다닌다는 것은 보통 마음을 먹지 않고서는 힘들다. 외출했다가 호텔이나 에어콘이 가동하는 실내에 들어오면 큰 기온차로 인해 몸은 금방 후줄근해버린다.

외국인이라면 날씨말고 또 신경을 곤두세워야할 것이 있다. 외국인 음주통제다. 카타르는 엄격한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에 음주관리가 여느 국가와는 아주 다르다. 고급호텔을 제외한 장소에서는 주류판매 및 음주행위가 금지돼 저녁에 피로를 풀기 위한 호젓한 술자리를 갖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필자를 비롯한 일행 등은 당시 이러한 주류 통제조항을 사전에 알고 공항 면세점에서 양주를 미리 구입해 카타르에 입국했다.

주변 이슬람 국가처럼 왕정제를 채택하고 있는 카타르는 귀족과 일반 시민의 괴리감을 좁히고 사회적 통합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주의식으로 국가를 운영했다. 이는 스포츠에서 가장 잘 드러났다. 카타르는 산유국으로 넘쳐나는 오일달러를 발판으로 국가의 부를 스포츠에 많이 투자해 카타르 국민들에게 ‘우민화 정책’을 펼쳤다. 사막위의 도시에 만들어진 다목적 체육관 시설은 참 훌륭했다.

국민들이 정치적 불만 등을 갖지 않도록 스포츠에 몰입할 수 있는 여러 여건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미 당시에도 미국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을 개최했고 걸프만 국제종합대회를 비롯해 아시아주니어 배구선수권대회까지 다양한 스포츠 국제대회를 열었다. 필자가 방문했을 당시 카타르는 중국에서 스포츠 강자로 이미 군림하고 있었고 스포츠 수준 향상을 위해 외국인 지도자를 많이 초청했다. 배구의 김충한 감독이 카타르 대표팀을 지도했고 태권도 사범들이 다수 활동하고 있었다.

카타르가 지난 주 한국과 미국을 제치고 2022월드컵 개최지로 선정되면서 16년 전 필자가 경험했던 카타르만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가 궁금했다. 궁금증은 카타르월드컵유치위원회가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회의서 밝힌 기상천외한 해법을 알고 곧 풀렸다. 카타르월드컵유치위원회는 월드컵이 열리는 6~7월의 살인적인 폭염과 관련해 태양 전지패널을 이용한 친환경 냉방시스템을 통해 경기장 온도를 27도로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같은 개방된 대규모 공간을 대상으로 한 냉방시스템 구축은 지금껏 시도된 적이 없는 작업이어서 과연 카타르월드컵조직위의 구상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는 앞으로도 관심거리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통제와 음주규제 문제는 카타르 측에서 월드컵 기간내에 한시적으로 완화방안을 제시해놓고 있어 크게 문제는 되지 않을 듯하다. 카타르가 가장 자신하고 있는 것은 오일달러 힘을 앞세운 물량전일 것이다.

카타르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16%에 이르고 세계 3위 가스수출국으로서 그동안 월드컵 유치국가들이 가장 염려했던 사업비 조달은 크게 문제가 없을 듯하다. 한국의 경기도만한 땅에 12개의 월드컵 경기장이 들어서게 되는데 총 40억 달러(약 4조 6천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카타르가 2022월드컵 개최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자연적이고 문화적인 악조건을 기회로 잘 소화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2022월드컵 유치경쟁에서 정몽준 FIFA 부회장만의 ‘단독플레이’로 임하면서 2002 한ㆍ일월드컵 때와 별반 다른 것이 없는 제안을 내놓은 한국이 밀려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카타르의 차별화된 유치방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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