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연 한국트리즈 경영아카데미 원장

인지 기술을 연구하는 하버드 대학교의 데이비드 퍼킨스는 지능이나 재능, 전문성은 창의성과 관련이 없으며 누구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강변한다. 한편 로버트 아이스버그는 창의적 아이디어에는 항상 선례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때때로 느닷없이 튀어나온 아이디어처럼 보이는 이유는 관찰자들이 그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산한 개인의 지식 기반에 무지하기 때문이라 한다.

완전히 새로운 것이 있을까? 모든 창의성은 존재하는 것에서 나온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모방하여 약 150개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창조해 낸 피카소는 평생 엄청난 양인 약 50,000점의 다작을 남긴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모방이라는 표현 대신에 변형(transform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지만 두 단어는 같은 뜻이다. 그는 <게르니카>를 그리기 위하여 무려 45개의 예비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 <게르니카>의 모델은 그의 에칭 작품인 <미노타우로마키>이다.

이 두 작품에서 황소, 말, 죽은 사람, 검, 꽃, 새, 수직방향의 사람, 위에서 주시하는 두 여자 등의 요소들이 일치한다. 여기에 <미노타우로마키>의 투우와 <기르니카>의 폭격이 아이디어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였다. 한편 털 달린 막대기(붓)가 아닌 깡통으로 캔버스에 페인트를 뿌려 유명해진 잭슨 폴락(1912~1956)은 멕시코 화가인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1896~1974)를 따른 것이다. 즉, 그의 작업 방법을 모방한 것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그동안 사교육업체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온 등급 커트라인 분석에 나서는 등 입시 정보전쟁에서 ‘공교육의 반격’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사교육기관에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취지로 사설 학원 흉내를 내는 것은 웃기는 짓이라는 반대 의견도 있지만 장사꾼은 사람이 몰리는 곳에 가는 게 맞는 이치이다. 경영학에서는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라고 부르는 이러한 ‘모방’은 사실 쉬운 게 아니다. 그러나 변화하려면 머리를 감싸고 고민하며 이처럼 모방을 시도하여야 한다.

이에 대하여 이수영 KAIST 교수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은 아주 특수한 경우이고, 대부분의 창의성은 다양한 지식을 종합(meta화)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창조하게 되며 모방은 인간 행동 중에서도 ‘고등(高等)’ 영역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모방이 없이 창의성은 없다. 그러나 누구나 모방을 할 수 있지만 잘 하는 것은 또 다른 얘기이다. 시스템을 모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한때 도요타 자동차를 벤치마킹하러 일본에 다녀왔다. 그러나 도요타를 모방하여 성공한 회사는 별로 없는 듯하다. 단순히 자동차 생산라인을 보고 창조가 나올까? 회사 구성원의 정신상태를 모방하여야 완전한 베스트 프랙티스가 가능하다. 21세기의 최고의 경영혁신기법인 6시그마만 놓고 보더라도 껍데기만 도입하여 실패한 기업 사례가 부지기수이다.

최근, 회자되는 창의적 문제해결 기법인 트리즈(TRIZ)도 마찬가지이다. 원리나 철학을 모방하지 않고 테크닉만 모방하여서는 6시그마와 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다. 좋은 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함은 모방의 지혜가 부족하여서이다.

모방은 곧 “옛 것을 익혀서 새로운 것을 안다는 것으로 옛 것을 바탕으로 새 것을 알아가거나, 옛 것을 낡은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의 보고로 삼아 끊임없이 되살려 내면서 그 위에 새 것을 더해 가는 것”인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지혜이다. 또한, 다른 산의 거친 돌이라도 옥(玉)을 가는 데에 소용이 된다는 뜻인 타산지석(他山之石)의 지혜이다.

즉, 군자도 소인에 의해 수양과 학덕을 쌓아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역사, 옛 것, 남의 것을 배움에 있어, 단지 그것을 알기만 하면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다. 즉, 그 속에서 새로운 이치와 이론을 알아내어 올바른 판단이 설 수 있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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