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칭찬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는지 안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칭찬이 사람을 즐겁게 하는 묘약(妙藥)인 것만은 분명하다.

메달(Medal)은 칭찬의 의미를 담은 상징물이다. ‘칭찬’이라는 말이 군자(君子)의 귀에 다소 거슬린다면 ‘치하(致賀)’라는 말로 바꾸면 좋을 것이다. 메달은 치하의 상징물이다. 말로 하는 치하는 허공에 흩어져 이내 사라지지만 메달은 영원히 남는 치하의 조형물(造型物)이다. 두고두고 만지고 보면서 그 의미를 느끼고 떠올릴 수 있을 것이므로 얼마나 신나고 좋은가.

하다 못해 자그마한 동네 축구 시합에서 주어지는 메달이라도 사람을 기쁘게 하는 데는 조금치의 모자람이 없으며 동네방네에 충분한 자랑거리가 된다. 메달은 사람의 강렬한 본성인 명예욕을 채워주는 데 효과를 발휘한다. 메달의 그 같은 효과로 사람이 인생사는 보람과 활력을 얻을 수 있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치하의 메달이 주어지는 일들이 될수록 많이 만들어지면 어떻겠는가.

메달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희소(稀少) 가치가 있다. 메달의 가치는 결코 몇 푼 안 되는 소재(素材)의 값으로 따질 수 없다. 메달의 진정한 가치는 그것을 딴 사람이 메달에 대해 느끼는 자부심과 의미의 크기 만큼이라 해야 할 것이다.

하늘 만큼이라면 하늘 만큼이다. 메달은 원형(圓形)이다. 메달의 시원(始原)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둥근 주물 화폐인데 그때의 모양이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이다. BC 5세기 경 그리스 은화는 귀중한 예술품이며 공예품이었다. 그것이 훈장 메달도 되고 기념 메달도 되어 주었다. 메달의 역사는 이렇게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메달은 세계어다. 이렇게 긴 역사 때문에 메달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그냥 메달이다.

오늘날의 각종 메달이 대략 직경 10cm 이내에서 제조 형식이 굳어진 것은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화가이며 메달 조각가인 피사넬로(Pisanello)에 의해서였다. 국제올림픽 조직위원회(IOC)는 올림픽 메달의 형식을 직경은 최소 60mm 이상, 두께는 최소 3mm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최소한의 조건과 피사넬로가 확립한 형식 사이에서 대개의 메달은 만들어진다. 메달의 소재는 금메달과 은메달은 순도 92.5% 이상의 은을 사용하되 금메달에는 6g 이상의 순금으로 도금하도록 했다. 동메달은 순수 구리로 만든다. 아시안게임 메달도 올림픽 메달의 제작 규정을 준용(準用)해 만들어진다.

이런 규정에 따라 만들어진 금메달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 30여만 원 정도, 밴쿠버올림픽 때는 메달이 다른 때보다 다소 무겁고 컸던 탓도 있지만 주로 크게 오른 금 시세 때문에 5백 달러, 우리 돈으로 50여만 원이었다. 하지만 어찌 그것이 메달의 제 값이랴. 메달이 얼마나 큰 감격을 주고 값지게 느껴졌으면 밴쿠버올림픽에서 금메달도 아닌 은메달을 딴 독일의 뮐러 선수가 메달을 입에 무는 세리머니를 하다가 이가 부서지는 것도 몰랐을까.

올림픽 메달이나 아시안게임 메달과 같이 국제스포츠대회에서 따는 메달은 인생을 걸고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물로서 얻어진다. 이것이 메달이 얻어지는 한 가지 방법이다. 국제 경기에서 획득하는 메달은 지구 70억 인구의 스타(Star)를 만들어낸다. 어느 분야에서든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로 이 많은 세계 인구의 스타로 우뚝 선다는 것은 메달 색깔에 상관없이 대단한 영예다. 개인의 영예일 뿐만 아니라 경기자가 대표하는 소속 국가의 영예다.

그런데 메달 획득이 국력과 엇비슷한 비례 관계를 보여주는 것은 대단히 흥미롭다.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은 금메달 13개로 10위권의 세계 경제 대국답게 7위를 했다. 홈 텃세의 이점을 활용한 G2의 중국은 금메달 51개로 1위였다. 중국의 인구는 14억 명으로 불과 5천만 명인 한국의 28배다. 이렇게 메달 획득수를 인구수와 상관 지어본다면 중국의 금메달 숫자는 한국의 그것과 비교할 때 너무 하찮은 것이 된다.

중국에 비해 극히 소수의 인구로 한국이 일구어낸 성과는 대인구의 중국의 성과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한국 국민의 일당백, 일기당천(一騎當千)의 우수성, 정예(精銳)의 뛰어난 국민 자질을 여실히 증명하고도 남는다.

2010년 광저우(廣州)아시안게임의 결과도 마찬가지다. 아시안게임의 스타국(國)은 금메달 1백 99개로 1위를 한 주최국 중국이 아니다. 똑같은 이유로 금메달 76개를 따내어 2위를 한 한국이 스타국이다. 더구나 한국 인구의 3배인 인구 1억 5천만 명을 가지고도 금메달 48개에 그쳐 3위에 머문 일본을 압도하면서 당당히 2위를 했으니 한국이 단연 돋보이는 스타다. 아시아인(人)은 물론 세계인 모두가 한국 선수들이 선전한 메달 레이스를 그러한 시각으로 지켜보았을 것 아닌가. 견강부회(牽强附會)가 아닐 것이다.

메달이 얻어지는 다른 또 하나의 방법은 굳이 메달을 목표로 하지는 않지만 대의를 위한 희생과 헌신, 인류를 위한 기여의 삶을 살 때 부산물로 주어지는 경우다. 독립유공자나 선열, 장렬한 전사자나 용전분투한 유공자에게 주어지는 유공훈장과 무공훈장, 산업훈포장, 의인(義人)이나 봉사자, 훌륭한 사회 활동가들에게 주어지는 훈장 메달이 그것이다. 또한 노벨상 메달도 있다. 이 모두 자랑스럽고 훌륭하고 값지며 개인을 빛내고 나라를 빛내는 메달이다.

고달프지만 지치지 않고 악착 같이 삶을 영위하는 서민을 고무하는 명목의 메달과 함께 사회 상위 계층이 사회적 의무에 솔선할 때 주는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 Oblige) 메달도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일기당천의 국민인데 1국민 1메달이면 무엇이 나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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