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썬 게이트’가 점입가경이다. 단순 폭행에서 시작된 사건이 이젠 눈덩이처럼 불어나다 못해 지축을 뒤흔들고 있다. 성접대 알선 의혹, 성관계동영상 불법촬영 논란에 급기야 경찰 최고위급 간부 연루설까지 돌면서 권력형 비리로 비화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나날이 늘어가는 버닝썬 관련 범죄 혐의들을 정리해봤다.

마약 필로폰 주사. (출처: 연합뉴스)
마약 필로폰 주사. (출처: 연합뉴스)

‘버닝썬 게이트’⑦ 마약: 두 번째 이야기

 

재벌가 자제들, 버닝썬 등 클럽서

밀폐된 방 빌려 은밀한 마약 거래

황하나, 버닝썬 MD와 마약 공범

모바일·온라인 마약 거래 유행

20~30대 마약사범 최근 급증

한 달간 적발된 마약사범 천여명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버닝썬 게이트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최근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31)씨가 버닝썬 영업직원 조모씨와 마약 공범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버닝썬 같은 클럽들이 부유층의 마약 거래 장소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15일 경찰에 따르면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황씨를 지난 12일 수원지검으로 구속 송치했다. 앞서 수원지방법원은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를 받는 황씨에 대해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황씨는 서울 자택 등에서 2015년 5~6월과 9월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그해 9월 서울 강남 모처에서 대학생 조모씨에게 필로폰 0.5g을 건네고 함께 투약한 혐의로 입건된 바 있다. 또 지난해 4월 향정신성 의약품인 클로나제팜성분이 포함된 약물 2가지를 불법 복용한 혐의 등도 받는다.

경찰은 황씨 조사 과정에서 서울 강남의 유명 클럽 ‘버닝썬’의 MD(Merchandiser, 영업직원)였던 조모씨와 전부터 교류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조씨는 버닝썬 직원 중에선 마약 투약 혐의로 기소된 첫 번째 인물이다. 버닝썬에 일하면서 대마를 흡입하고 필로폰과 엑스터시 등의 마약을 투약한 혐의를 받는다.

2015년 황씨와 함께 조사를 받았던 대학생 조씨는 “황씨와 조씨의 교류가 잦았다”며 “황씨가 2015년 11월 입건되기 전에도 조씨와 함께 마약을 투약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에 넘겨진 버닝썬MD 조씨도 최근 구치소에서 받은 경찰 조사에서 “황씨와 함께 마약을 투약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씨는 이문호 버닝썬 공동대표의 여자친구로, 황씨는 이 대표와도 SNS를 통해 친분을 드러내기도 했다.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은 후 검찰로 송치되는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씨가 12일 오전 경기 수원남부경찰서에서 검차로 이송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은 후 검찰로 송치되는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씨가 12일 오전 경기 수원남부경찰서에서 검차로 이송되고 있다. (출처: 뉴시스)

JTBC는 지난 9일 2015년 당시 불거진 자유한국당 김무성 의원 사위의 마약 의혹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조씨 등 마약 공급책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공개했다.

조씨는 취재진에게 김 의원의 사위를 비롯해 CF 감독, 대형병원장의 아들, 마약 공급책 등이 함께 어울려 놀았다는 취지로 말했다.

또 조씨는 경제적 수준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A·B·C 등급으로 나눠 마약을 자주하는 이들을 관리해온 사실도 밝혔다. A그룹은 고위정치인의 아들이나 대형병원 이사장의 아들들이 포함됐고, B그룹은 힙합가수나 CF 감독, C그룹은 일반인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버닝썬 같은 클럽에서 밀폐된 방을 빌려 마약을 거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씨와 전 연인 사이였던 가수 겸 배우 박유천(33)씨의 마약 의혹도 제기됐다. 황씨가 경찰 조사에서 “2015년 필로폰을 처음 투약한 이후 3년 동안 마약을 끊었지만, 지난해 4월부터 연예인 A씨의 권유로 다시 마약을 하게 됐다”면서 “A씨가 마약을 구해오거나 구해오라고 지시했으며, A씨가 잠든 사이에 강제로 본인에게 마약을 투약하기도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자 연예인 A씨가 박유천이 아니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에 박유천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결코 마약을 하지 않았다. 황씨가 마약 수사에서 연예인을 지목했고 권유했다는 것이 저로 오해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무서웠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재벌가 자제가 마약 혐의에 휘말린 것은 황씨뿐만이 아니다. SK·현대가의 3세들도 마약 투약 혐의로 구설에 올랐다. SK그룹 창업주인 고(故) 최종건 회장의 손자이며, 2000년 별세한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의 아들인 최모씨는 끝내 관련 혐의로 구속됐고,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인 현대가 3세 정모(28)씨도 같은 종류의 대마 액상을 구입한 정황이 드러나 경찰이 그를 불구속 입건하고 귀국하는 대로 수사할 방침이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그룹 JYJ 멤버 겸 배우 박유천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천지일보 2019.4.10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그룹 JYJ 멤버 겸 배우 박유천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천지일보 2019.4.10

한 중견그룹의 2세 A씨는 최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버닝썬이 처음 열렸을 때 재벌 2·3세들이 정말 많이 갔다”고 말했다.

그는 “(마약 관련) 소문이 돌았던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정말 마약을 했는지 또 지금도 하는지 모른다. 적어도 지금 걸린 사람들이 다가 아닌 건 확실하다. 떨(대마초)은 지금도 집에 갖고 있는 사람이 여럿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마약에 손댔으면서도 아직 경찰 조사를 받지 않은 재계 인사가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A씨에 따르면 재벌가 자제들은 해외유학 중 마약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해외 대학에 진학한 한국인들끼리 모이는 좁은 커뮤니티에선 같이 어울리다가 호기심에 쉽게 마약에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재벌가 자제는 돈이 차고 넘치게 있으니까 일반인들보다 더 강하고 많은 양의 마약을 구할 수 있다. 마약상들의 VIP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재벌가 사이에선 마약 투약이 상당히 흔한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최근엔 일반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마약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 예로 방송인 로버트 할리(한국명 하일)가 마약을 구매한 루트를 통해 알 수 있다.

할리는 이달 초 자신의 서울 자택에서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로 입건돼 경찰 조사를 받았다. 대중들은 소탈한 이미지의 할리가 마약을 한 거에도 놀랐지만, 인터넷으로도 간편히 필로폰 같은 강력한 중독성을 가진 마약을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마약 구매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SK그룹 창업자 고 최종건 회장의 손자 최모(31)씨가 1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로 들어서고 있다. 최씨는 지난해 평소 알고 지낸 마약공급책으로부터 고농축 대마 액상을 5차례 구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마약 구매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SK그룹 창업자 고 최종건 회장의 손자 최모(31)씨가 1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로 들어서고 있다. 최씨는 지난해 평소 알고 지낸 마약공급책으로부터 고농축 대마 액상을 5차례 구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2017 대검찰청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잠잠하던 마약사범 수는 2014년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모바일과 인터넷 환경에서 SNS사용량이 급증한 것과 연관이 있지 않겠냐는 분석이 있다.

이젠 마약사범들이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구매자들과 접촉을 시도하는데, 특히 많이 사용하는 메신저는 ‘텔레그램’이다. 텔레그램은 보안성이 강하고 이미 보낸 메시지를 삭제할 수도 있어 비밀 대화를 하기에 용이하다.

‘딥웹’도 문제다. 딥웹은 네이버나 구글 등 포털사이트 검색망을 통해 검색되지 않는 암호화된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그 중에서도 마약 등을 거래하기 위한 ‘다크웹’에선 적나라한 거래글이 넘쳐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자신이 팔 물건과 텔레그램 연락처를 남겨두면, 구매자들은 이를 보고 접촉해 마약을 구매한다.

이들은 ‘던지기 수법’으로 마약을 거래한다. 던지기는 마약 구매자가 돈을 입금하면 판매자는 약속한 장소에 마약을 숨겨 놓고, 이후 구매자 해당 장소에서 약을 찾아가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에 따라 모바일 환경에 익숙한 20~30대 마약사범도 증가하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마약류 사범 연령별 현황’에 따르면 20~29세 마약사범은 2014년 1174명에서 2016년 1842명으로 큰 폭으로 늘었다. 30~39세 마약사범 역시 같은 기간 2640명에서 3526명으로 급증했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체포된 방송인 하일(미국명 로버트 할리) 씨가 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서 조사를 마친 후 수원남부경찰서 유치장으로 입감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체포된 방송인 하일(미국명 로버트 할리) 씨가 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서 조사를 마친 후 수원남부경찰서 유치장으로 입감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버닝썬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터진 후 경찰은 마약류 집중 단속을 벌였다. 그 결과 한 달 남짓한 시간동안 1000여명에 달하는 마약사범이 붙잡힌 것으로 전해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마약청정국의 지위를 잃었다고 생각한다”고까지 언급했다.

실제로 UN 기준으로 인구 10만명당 마약사범이 20명 미만일 때 마약청정국이라 불리는데, 현재 우리나라는 2016년에 이미 28명을 기록했다.

마약은 점점 더 일상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마약을 단속할 조직은 축소되고 있다. 검경 마약수사 합동수사반은 지난해부터 활동을 멈췄다. 검경 수사권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공조 분위기는 쑥 들어갔다는 관측이다.

버닝썬에서 출발해 연예계와 재계를 휩쓸고 일반 대중에게까지 파고들고 있는 마약의 유혹을 과연 관계기관이 막아낼 수 있을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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