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쉬린 에바디(Shirin Ebadi)는 이란인으로 200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가 시상식에서 인용한 역사적인 수상소감은 바로 기원전 2500년 전 페르시아 키루스 대왕이었다. 에바디는 왜 까마득한 고대 인물을 시상식에서 상기시킨 것이었을까. 

‘그는 2500년 전 권력의 최정상에 있을 때 백성들이 원하지 않으면 통치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황제였다. 그는 개인의 종교와 신앙을 강압적으로 개종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를 보장했다. 키루스 대왕의 선언은 인권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나는 결코 전쟁으로 통치하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억압해서도 차별해서도 안 되며, 이유 없이 남의 재산을 강탈해서도 안 되며,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해서도 안 된다.’

기원전 539년 ‘키루스의 원통’으로 알려진 세계 최초의 인권선언문이다. 키루스는 바빌로니아를 점령한 후 노예로 잡혀있던 유대인들을 해방시켰다. 

이 시기 동양에서도 인권의 소중함을 논하는 사상이 태동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오직 사람이 가장 귀한 존재(天地間萬物中惟人最貴)’라는 글은 서경(書經)에 적힌 말이다. 공자는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면서 인(仁)을 최상의 목표로 갈파했다. ‘仁’이란 글자는 ‘사람이 하늘이고 땅’이라는 것이다. 맹자가 가장 중요하게 가르친 것도 ‘인화(人和)였다. 어린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동몽선습(童蒙先習)의 첫 장에 나오는 글도 이 대목이다. 

조선 봉건사회 형옥에 대한 기록을 보면 죄인을 다루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등 인권을 중시했다는 점이다. 성종 때 형조에서 임금에게 아뢴 것을 보면 세종의 인권존중에 대한 지극한 배려가 나타나 있다.   

‘세종조 때에는 형옥(刑獄)을 신중히 처리하는 뜻이 지극했는데도 지금은 대전(大典)에 기재되지 않고… 이를 폐지한 지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청컨대 선 임금의 고사에 의거하여 다시 감옥의 법을 제정하소서….’
성종은 형조의 주청에 다음과 같이 유시했다.

‘현재 죄수들의 죄상 경중을 잘 따지도록 하고, 감옥 안의 깨끗하고 더러움과 따뜻하고 서늘함과 허술하고 충실함과 죄수의 목마름과 옥졸(獄卒)의 횡포여부까지 살펴서 아뢰도록 하라.’

정약용의 흠흠신서(欽欽新書)는 형옥을 다룬 책이다. ‘흠흠’ 이란 ‘삼가고 또 삼간다’는 뜻이다. ‘재판의 기본은 성의를 다하는 것이고, 성의는 도리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인간 존중의 철학을 바탕에 깔고 있다. 

조선시대는 나이 70세가 넘는 노인들에게는 역모를 제외한 범죄자에게는 매(笞刑)를 때리지도 않았으며 인신구속은 더욱 신중했다. 대신 속전(贖錢)으로 형벌을 면제해줬다.  

현 정부는 국정 지표를 ‘사람이 먼저’라고 했다. 그러나 검찰은 두 전직 대통령을 포함, 전 정권 사람 150여명이나 감옥에 넣었다. 건강이 악화돼 거동마저 불편한 80이 넘은 고령자도 보석을 허가해 주지 않는다. 

검찰 조사를 받다 여러 명의 전 정부의 요직 인사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신문보도를 보면 미국에서 운명한 조양호 한진그룹회장은 검찰로부터 ‘18번이나 압수수색을 받았다’고 한다. 집권 초기 사정일변도의 긴장 된 분위기가 식지 않고 있다. 민심의 현장엔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가 높은 데도 집권층은 눈과 귀를 막고 있다. 4.3 보선에서 나타난 민의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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