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헌재의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가 헌법불합치로 결정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뻐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4.1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헌재의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가 헌법불합치로 결정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뻐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4.11

헌재,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2020년 12월 31일까진 불법

낙태 가능 한도 임신 22주

사회·경제적 이유로 낙태 가능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낙태죄가 시행된 지 66년 만에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그 파급력이 거세다. 합법적인 낙태가 언제부터 가능한지, 하게 된다면 임신 몇 주차까지 가능한지 관심을 끌고 있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1일 헌재는 형법 269조 1항(자기낙태죄)과 270조 1항(동의낙태죄) 중 ‘의사’ 부분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69조 1항은 여성이 약물 등 방법으로 낙태하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270조 1항은 의사·한의사·조산사 등 의료진이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고 낙태한 경우 2년 이하 징역을 처하게끔 한다.

◆낙태죄가 폐지됐으니 지금부터 낙태해도 되나요?

그렇다면 지금 당장 낙태를 해도 죄가 안 되는 걸까? 그렇지 않다. 헌재가 내린 결정은 ‘위헌’ 결정이 아닌 ‘헌법불합치’ 결정이다. 헌법불합치란 특정 조항에 대해 위헌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법을 개정할 시간을 주는 결정이다. 위헌을 선고해 조항이 바로 효력이 상실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서다.

헌재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시한을 두고 그사이 관련법을 개정할 수 있도록 했다. 즉 법 개정 전까지는 아직 낙태는 불법이란 소리다. 낙태죄 폐지라는 말만 듣고 시술을 감행했다간 문제가 된다.

물론 실제 시술을 받았다고 해도, 검찰이 낙태죄로 해당 여성과 산부인과 의사를 재판에 넘길 가능성은 희박하다. 잠시 시간을 벌었을 뿐 낙태죄는 결국 위헌 결정을 받아 사라질 조항이다. 결국 남은 기간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국회가 이른 시일 안에 관련법을 개정해야만 한다.

낙태를 위한 방법엔 시술만 있는 건 아니다. 의약품을 통해 유산을 유도하는 방법이 있다. ‘미프진’ 등이 대표적인 임신중절(유산 유도)약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이들 약을 구매할 수 없다. 아직 관련법조차 마련되지 않은 실정이다. 이 때문에 낙태죄 법 개정 시 유산 유도약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들이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임신 22주 전엔 무조건 낙태할 수 있나요?

헌재는 낙태가 가능한 일종의 ‘데드라인’으로 22주를 제시했다. 그렇다면 임신 22주 전에는 낙태가 언제든지 가능한 걸까? 역시 그렇지 않다. 헌재가 제시한 22주는 22주까진 조건 없는 낙태를 허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저 기간이 되기 전까진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우선을 두고 낙태에 대해 심사숙고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다.

낙태죄 폐지를 두고 가장 치열하게 다퉜던 쟁점은 바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중 어느 것이 더 우선하느냐는 점이었다. 헌재는 어느 한쪽으로 무게가 기울어지는 경계로써 22주를 제시한 것이다.

현행 모자보건법에선 헌재는 왜 22주를 한도로 제시했을까? 그 근거는 세계보건기구(WHO)에 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태아는 일정 시기 이후가 되면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데, 의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이 시기는 가변적일 수 있으나, WHO는 이를 임신 22주라고 하고 있다”며 산부인과 학계도 현시점에서 최선의 의료기술과 의료 인력이 뒷받침될 경우 임신 22주 내외부터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하다고 한다”고 밝히면서 22주를 한계로 제시한 것이다.

그러면서 헌재는 “이처럼 태아가 모체를 떠난 태에서 독자적인 생존을 할 수 있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와 비교할 때 훨씬 인간에 근접한 상태에 도달했다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22주 이후는 태아를 하나의 인간으로 판단하고 생명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낙태죄 헌법 위헌 여부 선고가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주재로 열리고 있다. 이날 헌재는 지난 1953년 낙태죄 조항을 도입한 지 66년 만에 ‘헌법불합치 선고’를 내렸다. ⓒ천지일보 2019.4.1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낙태죄 헌법 위헌 여부 선고가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주재로 열리고 있다. 이날 헌재는 지난 1953년 낙태죄 조항을 도입한 지 66년 만에 ‘헌법불합치 선고’를 내렸다. ⓒ천지일보 2019.4.11

임신 22주 차의 상태는 어떨까? 일반적으로 봤을 때 12주 이전을 임신 초기, 그 이후 28주까지를 중기로 본다. 22주라면 중기에 한참 들어선 시기로, 개월 수로 따지면 이미 6개월쯤 된 상태다. 이때 태아는 키 약 25~30cm, 몸무게 약 500~600g 정도로 자라 있다. 뼈대가 갖춰져 X선으로 태아의 골격을 찍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14주 이전의 낙태는 조건을 달지 않고 임산부의 판단에 따라 낙태할 수 있도록 하고, 14주 이후는 일정 조건을 충족해야만 낙태를 허용하는 방안으로 법이 개정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14주가 하나의 기준점이 될 확률이 높은 이유는 단순위헌 의견을 낸 이석태·이은애·김기영 헌법재판관의 의견에 들어맞는 까닭이다.

이들 재판관은 결정문에서 “(14주 무렵까진) 어떠한 사유를 요구함이 없이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숙고와 판단 아래 낙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이들 재판관이 14주를 조건 없는 낙태 가능 주기로 택한 이유는 산부인과 전문의들도 통상 12~16주까지는 임신한 여성에게 큰 위해를 가하지 않는 선에서 낙태가 안전하게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양육비가 없는 것도 낙태 조건이 될까요?

결론적으로 봤을 땐 헌재는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14주 이후의 낙태 조건에 관련해 사회·경제적 이유를 언급했다.

헌재 결정문에 따르면 국제연합(UN)이 이른바 선진국 권역(Developed Regions)으로 분류하는 유럽 전 지역을 비롯해 북미·호주·뉴질랜드·일본에서의 사유별 낙태 허용 국가의 비율을 조사한 결과, 2013년 기준 ‘임신한 여성의 생명 구조’는 96%,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 건강 보호’는 88%, ‘임신한 여성의 정신적 건강 보호’, ‘강간 또는 근친상간’ 및 ‘태아의 장애’는 각각 86%, ‘사회적․경제적 사유’는 82%, ‘임신한 여성의 요청’은 71%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헌재는 ▲임신으로 학업·직장 생활에 지장이 있는 경우 ▲소득이 불안정한 경우 ▲부부가 양육을 위해 휴직하기 어려운 경우 ▲상대 남성이 출산을 반대하고 육아 책임을 거부하는 경우 ▲임신한 후 상대 남성과 헤어진 경우 ▲결혼하지 않은 미성년자가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경우 등이 있을 때 낙태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물론 아직 법 개정이 되지 않았으므로 내년까지 논쟁의 여지는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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