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고성 속초 산불로 국민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내 일처럼 속이 타들어갔다. 모든 국민이 함께 아파했다. 산불이 잡히기만을 바랐고 주민들과 소방대원들이 무사하길 빌고 또 빌었다.

국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유한국당 사람들은 정부의 대응에 대해 사사건건 트집 잡으면서 공격에 여념이 없다. 일부 의원들은 대통령과 정부의 대응을 두고 세월호에 빗대면서 비판하고 있다. 야당은 정부가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호되게 비판해야 한다. 하지만 근거 없이 트집 잡고 재난마저도 정쟁의 도구로 삼는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의 마음은 떠날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 직후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과 김기춘 비서실장은 “청와대는 재난안전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다”고 했다. 당시 청와대는 ‘현행법상 재난 컨트롤타워는 총리실과 안행부장관’이라고 했다. 논란 끝에 ‘국가안보실이 컨트롤타워’라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대통령 훈령인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에 ‘재난 상황의 컨트롤타워는 국가안보실’이라고 명확히 나와 있다.

지난 4일 밤 산불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었다. 이 급박한 시점에 재난컨트롤타워 책임자는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 야당 의원들이 청와대 업무보고를 받는다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붙잡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난컨트롤타워를 붙잡아 둔 것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자 나경원 한국당 대표는 언론의 보도 태도가 유감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당이 “산불의 심각성으로 인해 안보실장이 이석하겠다고 요구한 바는 전혀 없었다”고 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화살을 여당으로 돌리고자 하는 고도의 정치술이다. 국민들은 뛰어난 정치 기술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진솔하고 진실된 모습을 원한다.

나 대표는 “오후 7시 45분 정도 정회하게 됐는데 회의에 집중하느라고 산불을 알지 못했다”고 했다. 나 대표의 말만 들으면 ‘만약 상황이 파악됐다면 안보실장을 붙잡아 두지 않았을 것’ 같다. 과연 그렇게 했을까? 40% 가까운 의석을 가진 정당의 대표가 산불이 시시각각 심각해지는 상황을 파악조차 못했다면 제 역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재난이 심각해질 때 그에 맞는 대응을 해내야 하는 존재가 공당의 대표이다.

나 대표는 “9시 30분쯤 홍 원내대표가 갑자기 불이 났는데 보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심각성을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이 부분에 대해 서너 분이 질의하면 끝나서 길어야 30분이라고 생각해서 (하고) 가는 게 어떠냐고 했다”고 말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금 고성 산불이 굉장히 심각한 것 같다. 속초 시내에서 민간인들을 대피까지 시키고 있다”고 하면서 “(정 실장은) 위기대응의 총책임자다. 그래서 양해를 구했는데도 (이석은) 안 된다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안타깝다”고 했다. 나경원 대표의 말과는 전혀 다르다. 서로 말이 엇갈리니 진실을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홍 원내대표가 모두가 듣는 자리에서 산불의 심각성을 말하면서 이석을 요구한 시점에라도 안보실장을 보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홍 원내대표가 공개적으로 말한 시점이 9시 30분이다. 이때라도 만사 제치고 즉시 보냈어야 한다. 홍 원내대표의 말 속에서 상황의 심각성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야당은 안보실장을 10시 38분까지 잡아 두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도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컨트롤타워의 발을 국회에 묶어 두었다. 무엇으로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재난 대응엔 1분 1초가 중요하다. 나 대표는 이 문제에 대해 여당에게 책임을 돌릴 것이 아니라 사과를 했어야 마땅하다. 그 흔한 유감 표명이라도 했어야 했다. 나 대표가 늦었지만 9시 30분에라도 정회를 요청하고 안보실장이 컨트롤타워로서 본연의 임무 수행에 충실할 수 있도록 보내 주었다면 칭찬을 들었을 것이다.

앞으로 재난이 발생할 때는 국회의 일정을 이유로 재난컨트롤타워를 국회에 붙잡아둘 수 없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그냥 넘어가면 이번 산불 사태와 같은 일이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국회가 다른 일정을 이유로 컨트롤타워가 제역할 못하게 만든 탓에 참사가 발생하게 될 경우 책임은 누가 지나? 애꿎은 국민만 죽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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