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헌재의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가 헌법불합치로 결정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낙태법 유지 촉구 집회에서 한 참석자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천지일보 2019.4.1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헌재의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가 헌법불합치로 결정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낙태법 유지 촉구 집회에서 한 참석자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천지일보 2019.4.1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7년 만에 다시 열린 낙태죄 처벌 형법의 합헌 여부 결정에 대해 종교계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11일 ‘낙태죄폐지반대전국민연합’이 주최한 반대 측 기자회견에는 목사 등 종교인들도 다수 참석한 모습이었다. 실제 연합 단체인 ‘낙태죄폐지반대전국민연합’에는 한국교회연합, 한국교회총연합,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등 보수 성향의 개신교 단체들이 포함 돼 있다. 이 때문인지 현장에는 교인들도 나와 있었다.

이 가운데 이날 반대 측 기자회견에 참석한 고영일 변호사는 “(낙태죄 위헌 결정은) 110만명의 태아를 학살하는 것을 뻔뻔스럽게 전 세계에 공포하게 되는 것”이라며 “태아는 낙태 찬성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단순한 세포에 불과하지 않다. 대법원도 사람의 생명은 잉태되면서부터 시작이 되고 태아는 새로운 존재와 인격의 근원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닌다고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설사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태아의 기본권이 충돌한다면 충돌하는 기본권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저울질해야 한다”며 “생명권과 자기결정권을 저울에 달아보면 어느 것이 더 중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생명권이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고 변호사는 “헌재 재판관들도 어머니가 자기결정권을 포기했기에 지금 그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라며 “그런데도 다른 사람의 생명권은 가치가 없다고 판결하면 되겠는가”라고 꼬집었다.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대표 주요셉 목사도 발언대에 나와 “말도 하지 못하는 약자인 태아의 인권을 왜 짓밟으려 하느냐”며 “우리 모두는 과거에 다 태아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모든 인간 생명은 고귀하고 무엇보다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존재며, 그것은 태아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반면 현장에서는 흔치 않지만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종교계 목소리도 나왔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의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종교계를 대표해 나온 자캐오 성공회 용산나눔의집 원장사제는 “교회는 오랜 시간 외면해왔던 여성의 고통을 진심으로 경청하고 사죄해야 한다”며 “여성이 임신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맥락과 경험, 여성의 몸에 새겨진 사회적 모순과 억압을 들여다보고 섣불리 여성을 판단, 재단, 비난했던 모든 폭력을 회개하라”고 지적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낙태법 유지 촉구 집회에서 아이를 안고 있던 한 참석자가 헌재의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가 헌법불합치로 결정되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천지일보 2019.4.1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낙태법 유지 촉구 집회에서 아이를 안고 있던 한 참석자가 헌재의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가 헌법불합치로 결정되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천지일보 2019.4.1

오후 2시 46분쯤, 헌재에서 위헌이라 판결한 소식이 전해지자 찬성 측에선 환호가 터졌지만 반대 측의 얼굴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반대 진영 곳곳에선 “대한민국이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다”는 등의 목소리와 함께 탄식과 고성이 쏟아졌다. 6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은 “오, 주여”를 외치며 바닥에 주저 앉기도 했다. “말도 안돼”라는 허탈한 음성도 들렸다.

5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은 환호하는 찬성 측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격앙된 목소리로 “지구상에서 사라지라”고 야유하기도 했다. 십자가 목걸이를 착용한 또 다른 중년 여성은 환호하는 이들을 향해 “살인자”라고 비난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신학생은 “스스로 보호할 수 없는 태아는 누구보다도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며 “이날 헌재의 판결이 생명윤리의 붕괴의 시작이 되는 건 아닌지 그저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낙태죄 폐지에 적극적으로 반대해온 천주교는 가장 먼저 유감을 표명하고 나섰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는 “수정되는 시점부터 존엄한 인간이며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존재인 태아의 기본 생명권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고착시키고 남성에게서 부당하게 면제하는 결정”이라고 평했다.

한국교회연합도 성명을 내고 “헌재 결정은 태아의 생명권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우선시한 잘못된 판단이며, 이로 인한 생명 말살과 사회적 생명경시 풍조의 확산을 도외시한 지극히 무책임하고 편향된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헌재는 헌법 재판관 9명 중 헌법불합치 4명, 단순 위헌 3명, 합헌 2명 의견으로 낙태죄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다만 법적 공백으로 인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2020년 12월31일까지 현 규정의 효력을 유지하는 기한부 헌법불합치로 뜻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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