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헌재의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가 헌법불합치로 결정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뻐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4.1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헌재의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가 헌법불합치로 결정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뻐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4.11

헌법불합치결정에 폐지 측 뒤엉켜 환호

반면 유지 측 고개 숙이며 실망감 역력

폐지 측 “인구조절 도구의 역사 종결”

유지 측 “아이 죽는다는 사실 그대로”

선고 이후에도 남아 말싸움 벌이기도

[천지일보=홍수영·김정수 기자]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11일 헌재 앞은 찬반에 따라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낙태죄 폐지를 외치던 이들은 서로를 부둥켜 앉고 환호했고, 낙태죄 유지를 주장하던 이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헌재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낙태죄 처벌조항인 형법 269조 1항 등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선고기일을 열었다. 헌재는 형법 269조 1항(자기낙태죄)와 270조 1항(동의낙태죄) 중 ‘의사’ 부분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 같은 소식이 전달되자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던 쪽은 피켓을 흔들며 기쁨을 쏟아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국가가 낙태를 인구조절의 도구로 삼아온 역사를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종결하고 있다”며 “헌재의 헌법 불합치 결정은 역사를 바꿀 지점이 될 것”이라고 환영 의사를 밝혔다.

이어 “사회적 차별·불평등·위험 등 악조건 속에서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 싸운 여성들과 모든 이가 함께 이뤄온 역사적 승리”라며 “모든 사회 구성원의 성적권리와 재생산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회 모든 구성원의 재생산권이 보장될 수 있는 사회로 나가기 위해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한다”며 “여성을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하는 성평등 사회, 모든 이들이 삶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것을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영 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66년 만에 낙태죄를 폐지하는 날이 됐다. 이는 여성들이 이룬 성과”라면서 “국가의 생명통제로 여성의 권리가 막혔으나, 이젠 여성이란 이유로 도태되지 않고 여성으로서 배제되지 않고 살아 갈 수 있게 됐다”고 기뻐했다. 그는 “무엇보다 (여성들이) 낙태를 좀 더 안전하게 시술 받을 수 있게 된 것이 기쁘다”고 즐거움을 표했다.

김수정 공동행동 대리인단 변호사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되지 않는 한 태아의 생명권도 보장되지 않는다”며 “국회 입법과정이 남아있지만 임신·출산을 강제하지 말라는 헌재 결정과 여성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안채연(17, 여, 서울 중구 신당동)양은 “낙태죄로 (원치않는 임신 시)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어 아이를 살릴 수는 있겠지만 경제적으로는 풍족하게 키울 수 없을 것”이라며 “따라서 원치 않게 아이를 가진다면 낙태를 통해 그 아이를 힘들게 키우지 않아도 되고, 이후 어른이 돼 준비가 됐을 때 비로소 아이를 풍족하게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헌재의 결정을 반겼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헌재의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가 헌법불합치로 결정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낙태법 유지 촉구 집회에서 한 참석자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천지일보 2019.4.1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헌재의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가 헌법불합치로 결정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낙태법 유지 촉구 집회에서 한 참석자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천지일보 2019.4.11

기쁨이 넘치는 쪽도 있던 반면 같은 시각 같은 결론으로 인해 실의에 빠진 이들도 있었다.

개신교 단체와 시민사회단체 79개로 구성된 ‘낙태죄폐지반대전국민연합’은 “헌재의 헌법 불합치 결정에 유감을 표한다. 이 같은 결정은 생명을 보호하는 헌법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판단”이라며 “생명 권리는 기본권 중 기본권이다. 낙태를 하면 아기가 죽는다는 사실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 결정은 어느 것하고 바꿀 수 없는 생명을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라는 명목으로 포기한 것”이라며 “자기방어 능력이 없는 가장 나약한 태아들을 지켜주지 못한 잘못된 오류의 판정이다. 인정할 수 없다”고 날을 세웠다.

이명진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소장은 “허울 좋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미명 아래 태아 살인을 만방에 공표한 것”이라면서 “모든 권리의 전제조건인 생명권을 저버리며 헌재 스스로 평등 원칙을 위반한 기관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비록 낙태죄가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났지만 이들은 지금처럼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송혜정 낙태죄폐지반대국민연합 대표는 “생명운동은 어떤 상황이라고 해서 멈추지 않는다. 생명은 영원하듯 법이 어떻든 헌법이 어떻든 이어나갈 것”이라며 “미국에서도 46년째 생명운동을 이어나가고 있듯 계속 목소리를 높이면서 운동해 국민들의 의식을 바꿀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이의 학부모라는 김수진(44, 여)씨는 “말할 수도 저항할 수도 없는 태아를 낙태하는 과학적·논리적·합리적인 이유를 알 수 없다”며 “낙태의 모든 문제의 시작”이라고 지적했다.

천반으로 나뉜 단체는 이후에도 계속 서로를 도발하며 말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낙태죄 유지 측에서 “이게 기뻐할 일이냐. 살인자들아”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폐지 측은 “기쁩니다” “헌재 결정이 부럽나” 등으로 응수했다. 다행히 몸싸움 등 불상사로 이어지진 않았다. 경찰은 만약의 사태를 막기 위해 경찰 인력 150여명을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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