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이진성 헌법재판소장(가운데)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8월 심판사건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천지일보 2018.8.30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헌법재판소. ⓒ천지일보 2018.8.30

합헌 결정 이후 7년 만에 뒤집혀

“임산부 자기결정권 과도한 침해”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위헌결정

내년 12월 31일까지 법 개정해야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낙태죄가 생긴지 66년 만에 법을 개정하게 됐고, 앞선 합헌 결정 이후 7년 만에 결정을 뒤집게 됐다.

헌재는 1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낙태죄 처벌조항인 형법 269조 1항 등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선고기일을 열었다.

이날 선고될 내용 중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269조 1항과 270조 1항의 위헌 여부였다. 헌재는 형법 269조 1항(자기낙태죄)와 270조 1항 중 ‘의사(의사낙태죄)’ 부분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지난 1953년 규정한 낙태죄는 시행된 지 66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269조 1항은 여성이 약물 등 방법으로 낙태하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270조 1항은 의사·한의사·조산사 등 의료진이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고 낙태한 경우 2년 이하 징역을 처하게끔 한다.

수십차례 임신중절수술을 한 혐의(업무상 승낙 낙태 등)로 기소돼 1심 재판을 받던 산부인과 의사 A씨는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는 2017년 2월 이 사건 헌법소원을 냈다.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 규정이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헌재는 “자기낙태죄 조항은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정도를 넘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 대해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함으로 법익균형성의 원칙도 위반했다고 할 것이므로,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라고 설명했다.

헌재는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를 처벌하는 동의낙태죄 조항도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라고 밝혔다.

다만 헌재는 “위 조항들은 2020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고 밝혔다.

헌재가 내린 헌법불합치 결정은 특정 조항에 대해 위헌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법을 개정할 시간을 주는 결정이다. 위헌을 선고해 조항이 바로 효력이 상실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서다.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은 낙태죄가 바로 폐지돼 낙태가 전면 허용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판단에서다. 입법부가 헌재가 정한 시한까지 관련 법조항을 개정하지 않으면 낙태죄 규정은 곧바로 그 효력을 잃는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헌법소원을 청구한 A씨뿐만 아니라 낙태죄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던 피고인들도 공소기각에 따른 무죄가 선고될 전망이다.

다만 헌재가 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2012년 합헌 결정 이후 새롭게 낙태죄로 유죄를 선고받은 사람들은 재심을 통해 무죄 선고받기 힘들다. 위헌과는 다르게 기존 처벌 받았던 이들에겐 무죄 판단을 새로 받을 기회가 없는 것이다.

위헌 결정을 위해선 재판관 중 6명이 위헌이라는 의견을 내야 한다. 앞서 헌재는 지난 2012년 8월 같은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에서 재판관 4대 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당시 헌재는 “낙태를 처벌하지 않으면 현재보다 더 만연하게 될 것”이라며 “임신 초기나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고 있지 않은 게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번 선고에선 유남석 헌재소장을 비롯해 서기석·이선애·이영진 재판관이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고, 이석태·이은애·김기영 재판관은 단순위헌 의견을 냈다.

한편 헌재는 이날 선고를 위해 특별 선고기일을 열었다. 서기석·조용호 헌법재판관이 오는 18일 퇴임하기 전 핵심 쟁점 사항에 대한 선고를 마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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