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환수한 척암선생문집책판(拓菴先生文集冊板) 1장-권9의 23~24장에 해당(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19.4.11
이번에 환수한 척암선생문집책판(拓菴先生文集冊板) 1장-권9의 23~24장에 해당(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19.4.11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항일의병장의 책판이 독일에서 고국으로 돌아왔다.

11일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에 따르면, 을미의병 시 안동지역 의병장으로 활약한 척암 김도화(金道和, 1825-1912)의 ‘척암선생문집책판(拓菴先生文集冊板)’ 1장을 독일에서 지난 3월에 매입해 국내로 들여왔다.

이번에 돌아온 ‘척암선생문집책판’은 ‘척암선생문집’을 찍어낸 책판 1000여장 중 하나이며, 권9의 23~24장에 해당된다.

척암 선생의 책판은 현재 20장만이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조현재, 이하 ‘진흥원’)에서 관리되고 있으며, 이번에 매입한 책판까지 합치면 총 21장이 전해지게 되었다. 진흥원에 소장된 ‘척암선생문집책판’은 2015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유교책판’의 일부이기도 하다.

척암 김도화는 영남에서 활동한 조선 말기의 대학자이자 의병장이다. 한국 독립운동의 산실인 임청각(臨淸閣) 문중의 사위 가운데 한 명으로, 퇴계학통을 이어받아 학문에 힘쓰며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 1895년의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을미의병이 촉발되자 안동통문(安東通文)을 각지로 보내고 1896년 1월 안동의진(安東義陣)의 결성을 결의했다.

같은 해 3월, 2차 안동의진에서는 71세의 나이에 2대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지휘부를 조직하고 격문을 발송하여 의병 참여를 호소했다.

1896년 9월 안동의진이 해산하고 을사늑약(1905년)을 거쳐 1910년 한일 강제병합에 이르자, 척암은 자택의 대문에 ‘합방대반대지가(合邦大反對之家)’라고 써 붙이고 상소를 올리는 등 글로서 일제의 부당함을 끊임없이 호소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한 그의 활동은 높이 평가돼 1983년 대한민국 건국포장에, 1990년에는 대한민국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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