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신창원 기자] 10일 오후 강원 고성군 토성면 봉포리7반 마을의 고성산불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마을 앞 팔각정에서 향후 대책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 피해주민들은 사비를 들여 팔각정에 비닐 바람막이를 두루고 저녁 8시까지 이곳에서 지낸다. 이후 군에서 마련해준 숙소에서 잠자리를 청하고 아침일찍 다시 팔각정으로 돌아온다. ⓒ천지일보 2019.4.10
[천지일보=신창원 기자] 10일 오후 강원 고성군 토성면 봉포리7반 마을의 고성산불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마을 앞 팔각정에서 향후 대책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 피해주민들은 사비를 들여 팔각정에 비닐 바람막이를 두루고 저녁 8시까지 이곳에서 지낸다. 이후 군에서 마련해준 숙소에서 잠자리를 청하고 아침일찍 다시 팔각정으로 돌아온다. ⓒ천지일보 2019.4.10

“밭이 걱정돼 먼 임시거처 못 지내”

복구지원금 세대당 최대 1300만원

주민들 “터무니없는 지원금에 분통”

아직 의료지원 못 받는 곳도 많아

[천지일보=홍수영·이현복 기자] “왜 어르신들이 여길 못 떠나겠습니까. 평생을 살아온 우리 자리에서 살고 싶은 거예요. 지붕이 쓰러져도 내 집이 편하죠.”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지 닷새가 지난 10일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봉포리 주민 남정옥 (40대, 여)씨는 팔각정을 비닐로 간신히 바람만 막은 대피소에서 본지 기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지난 4일 발생한 산불이 고성·속초·강릉·동해·인제 등 시·군을 할퀴고 지나간 지 이틀이 지나 문재인 대통령은 이들 산불피해지역에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했다. 각처에서 구호물품이 도착하고, 여러 도움의 손길로 콘도 등의 임시 거처도 마련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집터를 떠나지 못하고 자리를 지키는 이들이 있다.

봉포리 7반 주민들은 산불로 소실된 마을회관 옆 정자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다른 마을이라면 마을회관이라도 활용할 수 있지만 이곳은 회관도 불에 타 정자가 대피소 노릇을 하고 있다. 군에서 마련해준 잠자리는 여러 곳에 분산돼 있지만, 아침만 되면 이곳에 모여든다고 했다. 평생을 일궈온 집을 떠날 수 없어서다.

마을 주민 남씨는 “군에서 지원해준 콘도며 연수원이며 다 좋다. 그런데 그것도 어쩌다 2박 3일이지 않겠나”면서 “우리가 바라는 건 하루빨리 실태조사가 끝나 이동식 주택이든지 임대주택이든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천지일보=신창원 기자] 10일 오후 강원 고성군 토성면 봉포리7반 마을의 고성산불로 전소된 주택 앞에 검게 그을린 태극기가 쓸쓸히 펄럭이고 있다. 집의 주인 박모 할아버지는 평소 월남참전 경험을 자랑스러워했다. 이 때문에 집 앞에 태극기를 게양해왔다. ⓒ천지일보 2019.4.10
[천지일보=신창원 기자] 10일 오후 강원 고성군 토성면 봉포리7반 마을의 고성산불로 전소된 주택 앞에 검게 그을린 태극기가 쓸쓸히 펄럭이고 있다. 집의 주인 박모 할아버지는 평소 월남참전 경험을 자랑스러워했다. 이 때문에 집 앞에 태극기를 게양해왔다. ⓒ천지일보 2019.4.10

모든 피해조사가 끝나기 전엔 집을 마음대로 치우기도 힘든 실정이다. 정부는 오는 15일부터 지역별 복구 방식을 판단하는 복구조사에 들어간다. 산림조사에 앞서 화재가 진압된 지난 5일부터는 이재민들의 재산 피해조사가 진행 중에 있다.

남씨는 “한달 내로 금방 된다는 생각은 안 하지만 빨리 해주셔야 저희가 컨테이너 등 이동식 주택을 놓고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산불피해지역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됨에 따라 주택 복구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보장된 지원금이 1300만원에 불과해 실질적인 대책이 되긴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을 주민 이기범(55, 남)씨는 “국가의 대응은 많이 좋아졌지만 1300만원은 부족한 액수다. 아직도 피해보상을 위해 싸우는 포항 주민들도 있고 형평성의 문제가 있는 건 안다”며 “다만 세월호의 예도 있고 예전이랑 다른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복구 지원금에 대한 불안감은 봉포리 뿐만이 아니다. 원암리 주민 박재언(70, 남)씨는 “평당 5~600만원으로 계산하면 한 집당 2억원 정도가 산정된다. 1300만원 갖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원암리의 한 주민은 “여기가 내 집이라고 생각해서 손으로 땅을 만지며 이게 값어치가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정신이 부족하다”면서 “지금 실태 조사가 끝나기까진 집에 손도 못 대게 하는데, 빨리 조사가 마무리 돼 복구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정부가 이 부분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강원도를 뒤덮은 산불이 진화된 지 닷새가 지난 10일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고성군 원암리의 불탄 한 가옥이 그대로 방치돼 있다. 이번 산불로 강원 산림 1757㏊가 불탄 것으로 집계됐다. ⓒ천지일보 2019.4.10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강원도를 뒤덮은 산불이 진화된 지 닷새가 지난 10일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고성군 원암리의 불탄 한 가옥이 그대로 방치돼 있다. 이번 산불로 강원 산림 1757㏊가 불탄 것으로 집계됐다. ⓒ천지일보 2019.4.10

인흥1리 마을 주민들도 평생 가꿔온 논과 밭을 떠나지 못해 마을회관에서 지내고 있었다. 김칠수 인흥1리 피해주민대책위원장은 “이곳에서 이렇게 대피생활을 하는 이유는 70 평생 일궈온 삶의 터전을 떠날 수 없어서”라며 “몸도 쇠약하고 교통편도 만만치 않아 군에서 마련해준 거처를 이용하기 쉽지 않다. 농경지를 살피기 위해선 이곳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용촌리 주민 박득용(70대, 남)씨는 군에서 마련해준 연수원 등에 갈 수 없는 다른 이유도 설명했다. 그는 “독거노인들이 많은데, 이분들은 콘도가 그런데 가봤자 말동무도 없고 우울증만 심화된다”며 “빨리 컨테이너라도 설치해 각자 기거하면서 마을회관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게 훨씬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산불피해주민들에겐 주택 외에도 시급한 문제가 많았다. 봉포리 7반 주민들은 산불에 각종 호흡기 질환을 호소하고 있으나 적절한 의료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봉포리 주민 남정옥씨는 “천진초등학교나 아야진초등학교에 의료진을 배치했다곤 하나 노인들은 거기까지 가는 것도 쉽지 않다”며 “마을을 순회할 의료진을 구성해 곳곳을 다니거나, 어르신들이 다닐 수 있는 병원을 지정해 어느 때고 진료를 받을 수 있게끔 해주면 좋겠다”고 간곡히 부탁했다.

[천지일보=신창원 기자] 10일 오후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고성화재로 전소된 주인의 주택앞에서 견공이 슬픔에 잠겨있다. 지난 4일 고성·속초 등 강원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의 산림 피해면적이 여의도 면적의 6배인 1757㏊(1757만㎡)에 이른다. ⓒ천지일보 2019.4.10
[천지일보=신창원 기자] 10일 오후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고성화재로 전소된 주인의 주택앞에서 견공이 슬픔에 잠겨있다. 지난 4일 고성·속초 등 강원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의 산림 피해면적이 여의도 면적의 6배인 1757㏊(1757만㎡)에 이른다. ⓒ천지일보 2019.4.10

원암리·인흥리 등의 주민들은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농기계도 지원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김칠수 대책위원장은 “지금은 트랙터도 삽도 낫도 다 불에 타 쓸 수 없다. 평생 밭을 일궈온 사람들인데 농사일을 떠날 수 없다”며 “2002년 태풍 ‘루사’ 때도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 그때는 농기구들을 지원해줬다. 이번에도 빨리 지원해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재민들은 결국 피해자들을 위한 길은 하루 빨리 산불 원인을 규명해 보상 절차가 이뤄지도록 해야 하는 것이라고 한 목소리로 주장했다. 봉포리 이기범씨는 “가해자가 특정돼야 보상이 빨리 나오지 않겠나”며 정부가 발빠르게 움직이기를 촉구했다.

이번 산불은 전신주 주변에서 불꽃이 튀면서 발생했다. 강원지방경찰청은 지난 5일 전신주 개폐기와 전선 등을 수거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 감정을 의뢰했다. 또 한국전력의 관리 소홀 여부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개폐기와 연결된 전선에 이물질이 날아와 충격을 준 결과 아크(전기불꽃)가 발생해 불로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한전 측 설명과 같은 수사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존재하는 상황이 될 수 있어 주민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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