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강연에 나선 이인숙(가운데) 관장이 이화여대 국어교육과 학생들 사이에 둘러싸여 활짝 웃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눈먼 절망 속에서 일어날 수 있던 비결 전해
66학번 선배 가르침에 여대생, 박수갈채 ‘감동’

이인숙(64·사진) 씨는 20년 전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은 이후 덕포진교육박물관을 건립해 사람들에게 삶의 소중함을 강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몇 개 안 되는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소재 교육박물관은 인숙 씨의 남편이 눈을 잃은 아내를 위해 수년간 모은 교육 자료를 모아 마련해 준 곳이다. 어른부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이곳을 방문한 이들은 철통 도시락·검정 고무·방패연 등 옛날 향수를 느끼게 하는 박물관 소장품들을 보며 급속도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현재와 과거를 되돌아보곤 감사함을 느끼고 돌아간다. 박물관을 잠시 떠나 초청강연에 나선 인숙 씨는 자신보다 40학번 아래인 05~10학번 후배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날이 자신을 일으켜 세운 날이 될 줄 꿈에도 몰랐다.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고 절망에 빠져 있을 무렵, 인숙 씨에게 아들의 담임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담임선생님은 인숙 씨에게 편지 한 통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아들의 편지였다.

‘저 좀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선생님.’ 음성으로 전해들은 편지 첫 줄부터 인숙 씨는 가슴이 턱하고 메여왔다.

“아니, 얘가 무슨 일이 있기에 선생님께 가서 도움을 요청했을까” 인숙 씨는 더 가까이 편지를 읽는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어머니께서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숙 씨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들이 알고 있었구나….’

교통사고로 시신경을 다쳐 눈이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 인숙 씨는 봉사가 된다는 사실이 무서워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숨겼다고 한다. 당시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던 인숙 씨는 감춘 이유에 대해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라고 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음식을 태우고,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길 수차례. 가족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게 이상했다. 아들은 이어진 편지에서 ‘책상에 앉아 교과서를 봐도 책 위에 엄마 얼굴이 무너져 내린다’고 말했다.

“그때야 정신이 들었어요.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만일 당시 담임선생님의 편지를 받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저는 없을 겁니다.”

인천 강화군 선원면 소재 성산수련원에서 만난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교육과 1~3학년생들 앞에 인숙 씨는 이렇게 얘기했다.

인숙 씨는 이화여대 66학번 졸업생이다. 무려 40학번 차이가 나는 선배와 후배와의 만남이었지만 올망졸망 모여선 여대생들에게 고난을 딛고 일어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며 이들은 ‘소통’하고 있었다.

▲ 이인숙 관장이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이 씨는 자신의 일화를 통해 ‘교사의 위대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만일 자신에게 담임선생님이 편지를 주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어떤 선택을 했을지 몰랐을 일이란 것이다.

인숙 씨는 최근 불거져 나오는 체벌 금지 논란과 관련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요즘 아이들의 마음이 굳어져서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사람이 돼 버렸다”며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녹일 수 있는 감성을 길러주는 힘이 교사에게 필요하다”고 안타까워했다.

“모두가 자신처럼 될 필요는 없지만, 모두가 희망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특히 교사는 실패와 좌절이란 어둠 없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소통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인숙 씨는 역설했다.

이 씨의 강연이 끝나자 장내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모여든 학생들은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 같지 않게 밝고 웃음이 많아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이 씨는 이렇게 자신을 불러주는 곳이면 교회·성당·장애인복지관·대학교, 기업체 어디든 찾아간다.

덕포진교육박물관에서 과거와 현재의 세대를 연결하는 일 말고도 이 씨는 자신보다 더 큰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마음을 비추는 빛이 되고 있었다.

▲ 덕포진 교육박물관의 모습 일부. 옛 향수를 느끼게 하는 오래된 교과서(왼쪽)와 연통난로에 철통 도시락이 얹여 있는 난로가 있는 교실을 박물관에 그대로 옮겨놨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