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록은 후세에 그 시대를 알릴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고려대장경판 장경판전 내부 (천지일보 DB)

벽화부터 소셜네트워크까지… 기록, 살아 숨쉬어
역사로만 그치지 않고 현대 살아가는 대중 속에 스며
사극 제작 등 중요한 참고 자료… 세대와 세대를 잇는 다리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평범한 유대인 소녀가 쓴 일기가 전 세계인들의 필독서로 자리매김했다. 지극히 개인사를 담은 일기는 곧 ‘안네의 일기’로 엮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참혹한 상황을 생생히 알려주는 매개체가 됐다.

최근 일본이 우리에게 돌려주겠다고 밝힌 ‘조선왕조의궤’는 왕실에서 행해졌던 의식(儀式)을 그림과 함께 글을 엮은 책이다. 의궤를 통해 재현된 수문장 교대식을 경복궁의 흥례문에서 매일 볼 수 있다. ‘안네의 일기’와 마찬가지로 조선왕조의궤 역시 대대로 내려오면서 당시 왕실 풍습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료다.

선사시대에는 벽화로, 문자와 종이가 생겨난 이후로는 글과 그림으로 당시 생활양식과 풍습을 남겼다면 20세기 이후에는 영상이 기록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로 등장했다. 노르베르트 베버(1870~1956) 신부는 1925년 일제강점기인 조선의 모습을 담은 영상은 80여 년 전 이 땅에서 살아간 우리 조상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 기록물이다.

◆기록문화, 거울로써 방향 제시

기록은 한 사람의 개인적인 역사일 수도 있겠고 국가의 역사일 수도 있다. 기록은 거울로써 오늘날 우리가 실수하지 않도록 방향을 설정하거나 조상들의 혜안을 얻는다. 이는 과거의 기록문화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있는 셈이다.

기록으로 남겨진 사실(事實)은 역사로만 그치지 않고 대중 속에 스며든다. 이는 사극 제작에서 살펴볼 수 있다. 감독이나 드라마 관계자들은 질 높은 극을 만들기 위해 등장 배우들의 의복과 말투뿐 아니라 건물, 음악 등을 모두 사료에서 참고한다. 이처럼 기록은 세대와 세대를 잇는 다리역할을 하고 있다.

◆“기록은 소중하니까요”

그 가운데 기록문화유산은 다분히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기록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를 지녔다.

명(明)나라는 자국에서 찾기 힘든 희귀한 책과 기록이 조선에 남아 있는 것을 놀라워하며 조선을 ‘문헌의 나라’로 칭송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우리 세계기록유산은 7점으로 독일(11) 오스트리아(10) 러시아(9) 폴란드(9) 멕시코(8) 다음이며 덴마크(7) 프랑스(7)와 동일하다. 두 사례를 보더라도 곧 조상들이 기록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기록의 중요성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흐려져 갔다. 박병련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근대화를 위해 조선과 일본 간 강제병합이 필요했다’는 일본식 사관(史觀)은 조선총독부가 충실히 남긴 기록에서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식민지 실상을 자세히 남길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지지 않았고 기록이 있어도 적극 발굴되지 못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이후 기록문화 수준이 이전보다 낮아졌음을 시사하고 있다.

◆기록 방법, 끊임없이 발전

또한 디지털카메라·컴퓨터, 트위터·블로그와 같은 소셜네트워크 등 다양화된 기록 매개체는 과거보다 더 많은 기록을 자주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옛날과 달리 지식인이나 전문인이 아니더라도 기록할 수 있게 됐다.

현재 국가기록물은 다양한 매체를 수용하면서 기록물이 켜켜이 쌓여가고 있어 후손들에게 ‘기록문화유산’을 물려줄 수 있게 됐다. 즉 사극드라마 제작이나 수문장 재현과 같이 후손들 역시 우리가 남긴 기록인 그들 삶 속에서 활용될 수 있는 범주가 크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개개인의 노력이 모여야 가능하다는 것을 기록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며 “넘쳐나는 기록의 홍수 속에서 남겨지고 남길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몫은 결국 개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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