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의 만남이 만들어낸 인연… “저도 아이들과 함께 자라가요”

◆ 나눔이 만든 ‘해바라기 공부방’

▲ 서울 사근동에 있는‘해바라기 공부방’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이미연 교사.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이승연 기자] “7개월 동안 함께 한 아이들이 당장 갈 곳이 없었어요. 그때, 평일 낮에는 비어 있던 사근동 청년회 사무실이 생각났죠.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아이들을 이곳으로 데려와 다시 공부를 시작했어요.”

이미연(33, 여) ‘해바라기 공부방’ 교사는 지난해 노동부 지원을 받는 성수동 희망나눔 봉사단체에서 약 7개월간 1:1 교사로서 활동했다. 그러다 노동부 지원 종료로 더는 교육을 못 받게 될 아이들을 위해 이 교사는 이 같은 결정을 내리고 이곳으로 옮겨왔다.

처음에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희망나눔을 찾았다던 이 교사는 “그곳에서 가르치는 즐거움이 뭔지 알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돈을 받고 아이들을 가르쳤을 때는 부담스럽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었다”며 “하지만 그곳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7개월간은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왕십리역에서 내려 한양대 뒤편 언덕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야 나오는 해바라기 공부방. 3~4평 남짓한 청년회 사무실이 지난해 겨울 이미연 교사와 5명의 아이들의 새로 자리 잡은 둥지다. 그녀는 현재 희망나눔에서 만났던 아이들과 공부방 인근 지역의 아이들을 합해 총 7명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7개월의 짧은 만남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은 아이들을 아끼는 그녀의 마음 때문이다. 이 교사가 성수동에서 만난 학생들은 대부분 한부모가정이거나 폭력가정 등의 아이들로 교육으로부터 소외돼 있었다. 그전에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던 이 교사는 “고등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 대부분 중학교 과정에서 기초를 다지지 못한 아이들이었다”며 “그렇게 기초를 못 쌓은 아이들은 또 대부분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그 아이들은 입시 경쟁에서도 뒤처질 수밖에 없다”며 “좋은 대학이 성공의 기준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끔 기본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 마음도 함께 나누는 곳

그가 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에게 특히 마음이 가는 또 하나의 이유는 본인 또한 넉넉지 못한 환경에서 어렵게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더 애착이 간다”는 이 교사가 세 자매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우연히 공부방 옆집 아주머니의 소개로 만나게 된 아이들, 그 중 첫째는 중3이었는데 영어 단어를 읽지 못할 정도로 기본 학습이 안 돼 있었다. 그런 상황을 본 이 교사는 “꼭 데려와서 공부를 가르치고 싶었다”고 한다. 안타까운 마음에 아이들과 상담을 하고 공부하기로 했었지만 부모님의 반응은 무관심이었고 덩달아 아이들까지도 마음이 변해갔다. 그래도 그 아이들을 위해 포기할 수 없었던 이 교사는 학교를 마치고 공부방 앞을 지나가던 자매를 붙잡고 몇 번이나 상담을 했다고 한다. 여러 번의 설득 끝에 함께 공부하게 됐고 얼마 후 이 교사의 생일날 이 자매들이 그녀를 펑펑 울렸다.

그렇게 애를 태우던 자매들이 선생님 생일이라고 몇 자루의 볼펜과 편지, 그리고 자신들의 간식을 모아 선물로 가져온 것이다. 그 편지 안에는 “내 얘기를 이렇게 들어주는 선생님은 처음이라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내 마음을 알아주는 선생님”이라고 적혀 있었다.

편지를 읽은 이 교사는 “아직 뭘 모르는 나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내가 아이들의 마음을 느끼는 것처럼 아이들도 제 마음을 알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그날부로 그는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다가오는 아이들의 진심을 소홀히 대하지 말자”고 다짐하게 됐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그를 “엄마 같다”고도하고 “상담하기 좋은 선생님”이라고도 말한다.

◆ “선생님과 장소가 필요해요”

“사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는데 너무 잘 맞아 아직 큰 어려움도 없었고 아이들을 보면서 함께 크는 것 같아 행복하다”는 그에게도 하나 둘 고민이 생겨난다.

근심에 찬 얼굴로 “선생님 모시기가 쉽지 않다”고 말하는 이 교사는 해바라기 공부방을 시작하면서 영어 교사를 구하기 위해 주변 학교에 전단을 붙이러 돌아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생들은 학점과 연계되지 않으면 잘 오려 하지 않고 무보수다 보니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어 6개월간 영어 선생님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몸이 아파서 휴직 중인 한 직장인이 아이들의 영어 교사가 돼 줬다. “몸이 아픈데도 아이들을 위해 반년이나 함께 일해 준 선생님께 감사하다”며 이 교사는 “학점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 봉사하길 원하는 학생들이 와줬으면 한다”고 바랐다.

그를 안타깝게 하는 또 하나는 장소와 교사가 부족해 중학생만을 대상으로 공부방이 운영된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설득 끝에 어렵게 공부를 시작한 세 자매 중 첫째도 고등학생이 되는 내년부터는 함께 할 수 없다.

그는 요즘도 “같이 공부하면 안 되느냐”고 묻는 아이를 보면 그저 미안할 뿐이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 때문에 함께 할 수 없는 게 안타깝다”며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후원을 받아 함께 공부할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 해바라기 공부방에 필요한 것은 각 분야의 관심과 사랑이다. 현재 사근동에는 중학생을 위한 공부방은 이곳뿐이다. 주변에 초중학교는 일곱 군데나 있지만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이 학원비 걱정 없이 와서 공부할 수 있는 곳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그래서 그녀는 더 해바라기 공부방을 위해 뛸 수밖에 없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부족하니 더 열심히 후원도 받으러 다녀야겠다”는 이 교사는 아이들과 자신 스스로 앞길도 감당해야 하기에 공부방에 수업이 없는 날이면 틈틈이 과외를 하러 다닌다. 그렇게 하루를 바쁘게 보내면서도 “내가 더 커져야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며 청소년 교육학에 관한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 교사.

그녀가 바라는 해바라기 공부방은 아이들이 답답한 체계에서 벗어나 숨 쉬고 나눌 수 있는 공간인 동시에 아이들의 꿈을 위해 기본을 다지는 장소다. 또한 학부모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갖춘, 동네에서 꼭 필요한 공간이다.

이런 그녀의 꿈이 모두 이뤄져 사근동 일대의 아이들과 주민에게 해바라기 같은 밝은 웃음을 안겨주는 희망의 공간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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