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주요 교통수단인 지하철. 그 노선을 따라가 보면 곳곳에 역사가 숨어있다. 조선의 궁궐은 경복궁역을 중심으로 주위에 퍼져있고, 한양의 시장 모습은 종로를 거닐며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지하철역은 역사의 교차로가 되고, 깊은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와 관련, 켜켜이 쌓여있는 선조들의 발자취를 지하철 노선별로 떠나볼 수 있도록 역사 여행지를 내·외국인에게 소개해 보고자 한다.

20190405-장수경-서울 종로구 보신각 ⓒ천지일보 2019.4.8
20190405-장수경-서울 종로구 보신각 ⓒ천지일보 2019.4.8

조선 수도 이후 사람 붐비던 곳
사방에 길 트여 십자가라 불려
한양전통 시장에 새소식 교류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북적거리면 어떠한가. 종각역에서 시작되는 종로는 조선이 수도로 정해진 이래로 늘 사람이 붐볐다. 한양 전통 시장도 자리해 사람이 왕래하며 새 소식을 전했다. 오늘날 종각역 부근은 높은 빌딩으로 옛 모습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다만 매년 12월 31일 한해의 끝과 시작을 알리는 타종행사를 하는 종각이 자리해 있어, 이곳이 역사의 중요 장소였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조선 초엔 초대형 누각

지하철역 이름처럼 종각역은 종을매달아 두기 위해 지은 누각으로 이곳에 ‘보신각’이 있다. 고종이 ‘보신각’이라고 이름 짓기 전까진 그저 ‘종루’에 불과했다.

1398년 건립된 종각의 크기는 현재의 보신각보다 훨씬 컸다. 세종 때에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초대형 누각으로 지어져 위용을 자랑할 정도였다. 하지만 전란과 화재 등으로 여러 차례 파괴와 재건을 거듭하면서 규모가 작아져 조선 후기에는 단층 전각이 됐다.

1899년경의 서울 종로구 종로 보신각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1899년경의 서울 종로구 종로 보신각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종각역이 있는 종로 네거리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왜 이곳이 중심인지 알 수 있다. 동쪽으로 쭉 직진하면 동대문인 흥인지문이, 서쪽으로 가면 서대문인 돈의문에 나온다. 북쪽으로는 북대문인 숙정문이 나오고 남쪽으로는 남대문인 숭례문이 나온다. 즉 이곳은 ‘사통팔달(四通八達: 길이 여러 곳으로 막힘없이 통함)’한 도성 중심지이다. 이에 이곳을 ‘십자가(十字街)’라고도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보신각은 ‘종합 관제 센터’였다. 하루동안 통행금지와 재개를 알리는 종소리가 나왔다. 종루 2층에 걸려있던 종은 매일 밤 10시경에 28번 울리며 통행금지를, 새벽 4시경에 33번 울리며 통행 재개를 알렸다. 한양 사람들의 하루를 관장하는 기준이었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은 보신각 종에 담기기도 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 이 목숨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 오리다

작가 심훈의 시인 ‘그날이 오면’이다. 일제강점기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만 한다면 죽더라도 한이 없겠노라는 애끓는 마음을 보신각 종을 치다 죽는 까마귀에 비유했다.

현재 걸려있는 보신각 종은 1985년에 새로 제작한 것이며 옛 동종(보물 제2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지난해 보신각 3.1절 타종행사 모습 ⓒ천지일보DB
지난해 보신각 3.1절 타종행사 모습 ⓒ천지일보DB

◆사람이 구름처럼 모이는 ‘운종가’

종로 네거리 부근에는 조선 최대 번화가인 운종가(雲從街)가 있었다. 마치 ‘사람이 많이 몰리는 게 구름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이곳에 시전이 형성됐다.

운종가에서 가장 큰 상점은 육의전(六矣廛)이었다. 비단가게인 선전, 명주가게인 면주전, 무명가게인 면포전, 종이 가게인 지전, 모시·베 가게인 저포전, 생선가게인 내외어물전 등이 이에 속한다.

시민들이 도심 한복판에 있는 청계천을 거닐며 여유를 즐기고 있다. ⓒ천지일보 2019.4.8
시민들이 도심 한복판에 있는 청계천을 거닐며 여유를 즐기고 있다. ⓒ천지일보 2019.4.8

태종의 아들인 세종은 1440년에 종루를 대대적으로 뜯어 고쳤다. 누각 아랫부분을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어 사람과 마소가 통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에 왕래는 더욱 자유로워졌고 한양에는 팔도의 물자가 몰려들어 활기가 가득한 곳이 됐다.

종각 주변에는 걷기 좋은 도심 속 산책로인 청계천이 있다. 과거에는 가난한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깃들었던 장소다. 하지만 복개 공사로 도심 속에 녹색공간이 되살아났고, 지금은 병풍처럼 둘러쳐진 높은 빌딩 속 도심에서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냇가 주변으로 핀 봄꽃은 바쁜 일상에 여유 한 모금을 주는 듯 보였다. 청계천은 왕십리 너머의 중랑천과 합쳐져 한강으로 빠진다. 물이 끊임없이 흐르듯, 종로는 예나 지금이나 지식이 더해져 가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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