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충청=김지현 기자]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향수길 56(하계리 39)에 위치한 ‘시인 정지용의 문학관’ 내부. ⓒ천지일보 2019.4.7
[천지일보 충청=김지현 기자]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향수길 56(하계리 39)에 위치한 ‘시인 정지용의 문학관’ 내부. ⓒ천지일보 2019.4.7 

“나의 청춘은 나의 조국!”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가곡 ‘향수’와 ‘고향’ 詩에 얽힌 이야기

[천지일보 충청=김지현 기자] “나의 청춘은 나의 조국!” 정지용 시인의 고백이다.

시인 정지용의 고향, 충청북도 옥천의 정경(情景)을 오롯하게 담아낸 시(詩) ‘향수’가 흐르는 곳, 그의 생가(生家)와 문학관을 찾았다. 마을 입구부터 눈에 띄는 카페의 간판 “꿈엔들 차마 잊힐리야”라는 글귀가 그의 서정적인 시와 멜로디를 떠올린다.

정지용은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로 대상을 선명하게 묘사하고 신선한 감각으로 한국현대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시인으로 유명하다.

1996년에 원형대로 복원되어 관리되고 있는 정지용 생가 곁에 정지용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천지일보 충청=김지현 기자]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향수길 56(하계리 39)에 위치한 ‘시인 정지용의 생가’. ⓒ천지일보 2019.4.7
[천지일보 충청=김지현 기자]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향수길 56(하계리 39)에 위치한 ‘시인 정지용의 생가’. ⓒ천지일보 2019.4.7

‘휘문중’ 학창시절부터 시에 대한 열정이 돋보이는 시인 정지용의 고향, 옥천은 이웃해 있는 영동 다음으로 충청북도의 최남단이다. 충청북도의 도청소재지 청주와는 거리가 멀어 인접해 있는 대전은 옥천 사람들의 생활권이 된지 오래. 옥천 가는 길은 대전에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수시로 운행되는 시내버스를 이용한다면 30~40분 거리이며 철도를 이용한다면 한정거장, 무궁화호로 13분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이다.

우리민족의 노래 이동원, 박인수의 ‘향수’는 KBS의 박광희. 신광철 PD가 작곡가 김희갑에게 부탁하여 탄생했다. ‘향수’의 작곡을 맡은 김희갑은 작곡을 위해 이들 두 사람의 음역과 음색을 연구하고 분석하느라 8개월 동안 각고의 노력을 했다는 후문이다.

시인 정지용은 이 시를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밤을 새웠을까.

대중 위에 도도하게 군림하던 국립오페라단원 테너 박인수를 대중 속으로 끌어내어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이때부터 정지용의 시 ‘향수’는 더 이상 암송의 대상만이 아니라 노래로서 우리의 사랑을 더욱 받게 되었다.

[천지일보 충청=김지현 기자]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향수길 56(하계리 39)에 위치한 ‘시인 정지용의 생가’ 옆, 문학관 앞 정지용 시인의 동상. ⓒ천지일보 2019.4.7
[천지일보 충청=김지현 기자]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향수길 56(하계리 39)에 위치한 ‘시인 정지용의 생가’ 옆, 문학관 앞 정지용 시인의 동상. ⓒ천지일보 2019.4.7

예전에도 그랬지만 시인 정지용은 이 노래로 인하여 국민시인의 자리를 다시 한 번 확고히 다지게 되었으며 그 잊혀져가던 고향의 정경은 이 노래로 인하여 우리들 마음속에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정지용 문학관에서 만난 김옥희 문화해설사는 “정지용 선생의 동경유학시절 작품이니 절절한 타향살이 서러움 타령도 있을법한데 그런 말초적 감정은 절제된 채, 오롯하게 고향을 그려낸 정지용의 언어적 미술은 단순히 천재성에 기인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지용은 통산 27년간 인연을 맺은 휘문보통고등학교 학생시절, 학생자치회와 동문회를 연합한 재학생, 동문의 자치기구인 ‘문우회’의 학예부장이 되어 휘문고보 교지 ‘휘문’ 창간호를 발간하게 된다.

사이버정지용문학관 “정지용의 생애-휘문고에서 유학시절까지”에서 보면, 그는 아시아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며, 당시 인도는 물론 전 세계를 뒤흔들어 놓은 신화적 인물인 타고르의 노벨상 수상작 번역을 처음으로 시도한 인물로 소개된다.

[천지일보 충청=김지현 기자]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향수길 56(하계리 39)에 위치한 ‘시인 정지용의 생가’ 옆 동상. ⓒ천지일보 2019.4.7
[천지일보 충청=김지현 기자]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향수길 56(하계리 39)에 위치한 ‘시인 정지용의 생가’ 옆 동상. ⓒ천지일보 2019.4.7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정지용은 어릴 때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고향에 돌아왔지만 이미 그 자신의 추억 속에 잠겨있는 그 ‘고향’은 현실 속에서 찾아볼 수 없어 고향 상실의 허무감과 서정적 비애감에 사로잡혀 있다. 어쩌면 고향 자체는 변하지 않았는지도 모르지만 성장과정에서 더 큰 세계에 대한 경험과 역사의 뼈아픈 상처 등이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해 가졌던 포근함과 정겨움을 앗아 갔을 수도 있다. 시대적 상황으로 보면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짓밟아 버린 조국에서는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껴지고 그저 자신은 나그네였던 것이다.

어느덧 내년이면, 1902년 5월 15일에 태어난 정지용 시인이 태어난 지 118년이 되며, 이와 나이가 비슷한 옥천역(沃川驛)은 ‘역사(驛舍) 115주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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