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시민주권 홍보기획위원장

요즘 <위키리크스(WikiLeaks)>라는 폭로전문 웹사이트가 새롭게 들춰낸 미국 외교문건 파동을 보면서 칼럼 한 편이 떠올랐다. 평소 다양한 현장 취재경험을 바탕으로 현상의 이면을 꿰뚫는 깊이 있는 칼럼을 써온 이영성 한국일보 부국장이 10월 2일 한국일보 <메아리>에 게재한 <MB는 헬무트 콜이 될 수 있을까>란 문제적 글이 바로 그것이다.

이 부국장은 이 글에서 1990년 10월 2일 독일 통일 공식 선포 전야제의 모습을 전하면서 분단 한국의 현실을 떠올린다. 그는 “(현재)철저한 대북 봉쇄로 북한의 경제난을 가중시켜 괴멸시키자는 노선도 그다지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북한을 엄호하는 중국이 있기 때문이다”고 전제하고 “북한 급변사태 시 중국 군대가 진주한다면 속수무책이다. 독일 통일 때 결정적 키를 쥐고 있던 소련은 붕괴 직전이었고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열린 지도자였지만, 중국 지도자들은 남한으로의 통일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힘으로 제압할 수 있을까. 한반도의 절멸을 각오하지 않는 한 힘든 일이다”고 경고했다.

이 부국장의 결론은 중국이 북한과 형제적 혈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에 우리가 대북 적대정책을 고수하다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자칫하면 우리가 북한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발상의 현실화는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상황이다. 북한을 우리가 흡수통일하려 할 경우 중국은 당연히 이를 경계하고 나설 것이다. 더구나 새로이 관할하게 된 북한지역에 미군기지까지 들어선다면? 아마도 중국은 1960년대 쿠바의 미사일 사태 때 미국이 발끈했던 것 이상으로 반발하고 나설 것이다.

이런 생각에 이번 위키리크스 파동이 오버랩된다.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발언이다.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미대사는 지난 2월 17일 천영우 당시 외교부 차관과 오찬을 한 뒤 양자간의 대화록 요지를 전문으로 미 국무부에 보냈다. 이 자리에서 천 차관은 “북한이 붕괴할 경우 중국은 군사분계선(DMZ) 이북에 미군이 존재하는 것을 분명히 환영하지 않을 것”이지만 “한국이 중국에 적대적이지 않는 한 중국은 한국이 지배하는 통일한국에 안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문은 이어 “한국 정부가 북한의 강력한 동맹국인 중국을 달래기 위해 광물자원이 풍부한 북한에서 중국 기업들에 풍부한 사업 기회를 보장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바로 이 대목이다. 중국을 달래기 위한 보상방안이 심상치 않은 것이다.

이와 관련, 참여정부시절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을 지낸 박선원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초빙연구원이 지난달 30일 미국이 북한 흡수 통일시 중국에게 북한 영토 일부를 떼주려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박 연구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스티븐스 주한미대사가 워싱턴에 ‘한국주도 통일시 중국 반대 무마용 경제보상 필요성’을 보고했다. 충격이다”라며 “10월 중순 워싱턴에서 만난 (미국) 고위관계자의 발언이 떠올랐다”며 고위관계자 발언을 소개했다.

박 연구원에 따르면 미국 고위관계자는 “김정일 정권이 곧 망할 텐데 한국이 북한을 다 접수하면 중국이 싫어할 테니 좀 떼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이 이에 “무슨 말이냐. 북한 땅 일부를 떼 주자는 거냐”라고 묻자, 미국 고위관계자는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박 연구원이 “어디? 신의주나 나선(나진, 선봉) 지방?”이라고 구체적 지명을 거론하자, 미국 고위관계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 연구원은 “더 묻지 않았다. 반드시 더블체크를 위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며 “근데 위키리크스가 나왔다”고 덧붙였다. 그는 “신라가 삼국통일한다며 고구려 절반 이상을 당나라에 떼 준 게 떠오른다”고 개탄했다.

굳이 박 연구원의 절망에 찬 한탄을 들먹이는 이유는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정국의 요동이 너무도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4강은 정작 우리 민족의 통일과 안위를 뒷전으로 한 채 각각 자신들 이익의 극대화에만 골몰하고 있음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남북 간은 주체적 견인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장기판의 쫄때기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이명박 정부의 획기적인 대북정책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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