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부부 일터 한순간에 잿더미로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급히 도망”
“수백대 차량 다 타는데 손도 못써”
인추협, 자원봉사운영시스템 미흡
이재민 안정자금 지원 열흘 걸려
[천지일보=박준성·김성규 기자] “산불로 나의 인생과 꿈이 사라져 버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희망을 키우며 부인과 함께 살아왔던 생활공간이 없어지니 나의 삶이 송두리째 빼앗긴 것 같다.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고 말로 표현 못 할 정도로 슬픔이 밀려온다.”
산불로 긴급 대피한 뒤 아침에 돌아와 보니 집은 앙상한 뼈대만 남아버린 채 전소된 상태였다. 6일 고성 천진초등학교 대피소에서 만난 허세황(56, 남)씨는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한 터전 앞에 망연자실해 하며 이같이 말했다.
몇년 전 서울에서 내려와 고성군 토성면 봉포리에 집을 지은 허씨 부부가 키운 귀농의 꿈은 화마로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는 양말도 신지 못한 채 귀중품을 모두 두고 나와야만 했다. 허씨는 “봉포리 집이 완전히 전소됐다. 이젠 아무것도 없다. 그때는 지켜보거나 챙길 겨를도 없었다. 대피하기 바쁜 상황이었다”며 “전소된 집은 몇 십년을 계획하고 귀농한 후 2년에 걸쳐 내가 직접 지어서 애착이 많은 집이다. 제 몇 십년의 인생이 없어진 것 같다”고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눈시울을 붉힌 부인 이상숙(52, 여)씨는 “어제는 이건 뭔가 싶었다. 이게 뭐야, 현실이 이제야 보인다. 상실감으로 방금 심리상담 치료도 받고 왔다”고 했다.
이씨는 “개인의 문제로 발생된 게 아닌데 내가 왜 여기에서 살고 있나, 왜 여기에서 밥을 먹어야 하나 괴로웠다”며 “우리 부부가 아끼던 물건이 사라졌다. 그거에 대한 상실감이 경험하지 못하면 알 수가 없다. 일도 사라지고,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데 너무나 막막하다”고 말했다.
고성 토성면 원암리에서 딸과 생활하던 이종선(여, 85)씨는 “아무것도 못 가지고 급히 나왔다. 이 몸뚱이 하나 가지고, 젓가락 숟가락 하나도 못 가지고 대피했다. 우리 집이 흔적도 없이 다 타버렸다”며 “나와서 보니 불이 벌겋게 산을 넘어오고 있었다. 불과 연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고, 입이 금방 말라서 말도 안 나왔다. 불이 한순간에 내려와 집을 다 태웠다”고 당시의 기억을 꺼냈다.
고성 산불은 강풍을 타고 빠르게 번져 속초지역 마을 등에 화마의 흔적을 남겼다. 속초시에서 폐차장을 운영한 김재진(남, 50대)씨는 “산불 소식을 듣고 급히 가게에 와보니 불길이 노을지듯 이쪽부터 저쪽까지 새빨갛게 번지고 있었다. 제 가슴이 두근거렸다”며 “직원을 불러 바깥쪽부터 물을 뿌려서 불이 붙지는 않았다. 근데 옆 가게 납품업체 빠레트에 금방 불이 확 붙더니 저쪽 옆 건물이 불이 달라붙었다. 그때부터 불이 확 번져 수백대의 차량이 새벽 3시 30분까지 타는데 아무 손도 못 쓰고 허망하게 바라만 봤다”고 탄식을 쏟아냈다.
전국 각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산불 피해를 입은 고성·속초지역 이재민을 돕기 위해 온정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속초시자율방제단 서경자(여, 68)씨는 “집집마다 다니며 이불이랑 옷이 있으면 저희가 직접 빨아드리고 이곳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봉사하고 있다”며 “이재민들이 용기 내서 생활의 터전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문 대통령과 정부가 하루빨리 고성과 속초 등 모든 피해 지역에 도움을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부터 산불 지역을 돌며 피해 조사에 나선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인추협) 고진광 이사장은 자원봉사 운영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자원 봉사를 신청하면 지금 수습이 먼저라서 접수만 받고, 자원봉사는 필요 없다고 답변한다”면서 이재민을 돕기 위해 봉사자 운영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강원 산불 피해지역 특별재난지역 선포
문재인 대통령은 6일 사상 최악의 산불 피해를 본 강원도 산불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낮 12시25분경 산불 피해가 발생한 강원도 고성군·속초시·강릉시·동해시·인제군 등 5개 시군을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확정했다.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앞으로 이 지역들에는 범정부적인 인적·물적 지원이 이뤄질 것”이라며 “정부는 적극적인 지원으로 산불 피해 복구와 수습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피해 지역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됨에 따라 사망·실종한 사람의 유족과 부상자에 대한 지원이 이뤄진다. 주민의 생계안정 비용 및 복구에 필요한 행정·재정·금융·의료상의 비용도 국고로 지원한다.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기준 잠정 집계된 피해 시설은 총 916곳이다. 재난 지역은 최대 2주간 조사해 피해액을 산출하게 된다.
중대본 관계자는 “구체적인 재정 지원 규모는 피해조사 후 중대본 회의를 거쳐 결정하게 된다. 현재까지 정해진 것이 없다. 생계유지를 위한 안정자금 선(先)지원이 가능하나 최소 열흘은 걸린다”고 밝혔다.
슬픔에 잠긴 이재민들의 고단한 삶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행안부는 신속한 지원을 약속했지만 실제로 지원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 국방부, 강원도 산불 현장에 장병 7백명 투입… 총력 지원
- 정부, 강원 산불 피해 이재민에 긴급주택 지원… 긴급복지 상담소 설치
- 文대통령, 강원도 산불피해 특별재난지역 선포
- 소방청, 강릉·동해 산불 대응단계 하향… 인제는 1단계로 낮춰
- 강원도 산불 사실상 진화… 경찰은 화재 원인 조사
- 강원 산불, 피해 규모·원인조사 본격화… 피해 산림면적 530ha
- [천지일보 영상르포] “화마가 할퀴고 간 나의 집, 인생이 무너졌다”
- [인제] 평화지역발전 성공추진 ‘TF팀·추진협의체 간담회’
- [강원산불 1주일] “평생 일궈온 터전 떠날 수 없어”… 산불피해에도 집 맴도는 피해주민들
- [인제] ‘에누리장터와 콘서트’로 산불 침체지역에 활력
- 확 줄어든 이재민 임시텐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