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우리에겐 조금 낯선 나라인 슬로바키아에서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당선됐다. 변호사 출신의 올해 45세인 카푸토바(Zuzana Caputova)가 그 주인공이다. 그가 속한 정당인 ‘진보적 슬로바키아(Progressive Slovakia)’는 의석 한 석 없는 원외 정당이다. 게다가 카푸토바는 정치라고는 이번이 처음이다. 따라서 카푸토바가 정치 신인이고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점 보다는 기성체제에 대한 반감과 변화를 향한 슬로바키아 국민의 열망이 그만큼 강렬했으며 카푸토바가 그 대안이 됐다는 데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슬로바키아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으로 독립했지만 그 후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이웃 헝가리와 폴란드, 독일, 러시아 등에 잇달아 영토를 내주면서 인구와 국토가 대폭 줄어들었다. 그리고 1960년대 공산당 치하의 사회주의 공화국을 거쳐 1990년대 동구 공산체제의 몰락과 함께 ‘체코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으로 국호가 바뀌었다가 당시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1993년부터 체코와 분리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은 인구 550만명에 국토는 남한의 절반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나라이다.

슬로바키아는 의원내각제 국가이다. 따라서 행정부의 수반은 총리가 맡고 있다. 반면에 임기 5년의 대통령은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원수로서 국군 통수권자이지만 주로 의전적 기능에 집중돼 있다. 물론 국회 해산권과 법률안 거부권을 갖고 있지만 아주 제한적이다. 그리고 1999년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 국민직선제와 결선투표제를 도입했다. 이번에 당선된 카푸토바도 결선투표에서 58%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연립정부를 이끌고 있는 집권 사회민주당(SMER-SD) 소속 세프쇼비치(M.Sefcovici) 후보는 42%에 그쳤다.

국민적 분노가 대선을 강타했다

카푸토바의 승리 배경은 한마디로 ‘분노와 변화’로 압축된다. 분노는 기득권 세력의 ‘부패’에 대한 분노였으며, 변화는 슬로바키아의 ‘새로운 미래를 향한 변화였다. 카푸토바는 비록 정치에는 신인이었지만 슬로베니아 환경운동권에서는 유명한 변호사이자 활동가였다. 와인과 불법 폐기물 매립장으로 유명한 고향 페지노크(Pezinok)에서 환경문제로 무려 14년 동안 법정투쟁을 통해 승리를 이끌어 낸 주인공이었다. 이 싸움으로 카푸토바는 환경운동가의 활약을 다뤘던 유명한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Erin Brockovich)와 연결시켜서 ‘슬로바키아의 에린 브로코비치(Erin Brockovich)’로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2016년에는 그 공로로 ‘골드먼 환경상(Goldman Environmental Prise)’을 받기도 했다. 이를 통해 카푸토바는 슬로바키아 국민들에게 참신하고도 강한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었다.

결정적인 사건은 그 뒤에 벌어졌다. 슬로바키아 정치권과 이탈리아 마피아의 유착관계를 취재하던 젊은 탐사전문 기자 쿠치악(J.Kuciak)이 지난해 2월 약혼녀와 함께 피살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슬로바키아 국민들의 분노를 촉발시켰고 급기야 대규모 시위로 이어져 피초(R.Fico) 총리가 사퇴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당시 반정부 시위는 공산정권을 붕괴시킨 1989년의 ‘벨벳혁명’ 이후 최대 규모였다고 하니 국민의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바로 그 분노의 한 복판에서 카푸토바는 ‘거악’과 싸우겠다며 정치권 진출을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그 거대한 분노가 폭발해서 유럽정치의 거물이던 피초 총리를 퇴진시키고 이번에는 대통령까지 갈아치운 것이다. “함께 악의 무리들과 싸웁시다(Let's fight evil together)”가 카푸토바의 대선 슬로건이었다. 국민적 분노 앞에 두 딸을 둔 이혼녀라거나 정치경험이 전무한 여성 또는 의석 하나 없는 원외정당 후보 등의 낡은 정치 문법은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신선하고 깨끗하다는 이미지가 더 돋보였던 셈이다.

카푸토바의 정책 비전을 보면 최근 유럽정치를 휩쓸고 있는 극우주의나 포퓰리즘 같은 흔적을 찾기 어렵다. 환경정책 등에서는 중도좌파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지만 기존의 좌파와 우파에 매몰되지 않는 ‘국민 중심’의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 게다가 극우주의 노선을 노골적으로 표방한 집권당 후보 세프쇼비치와 맞서면서도 자신은 ‘거악’에 맞서는 국민적 담론을 놓치지 않았다.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카푸토바는 포퓰리즘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좌파와 우파의 강고했던 벽을 허물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카푸토바가 끝까지 견지했던 그의 핵심 가치였다.

카푸토바 이후 유럽정치에서 극우주의나 포퓰리즘이 조금씩 시들해 질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슬로바키아 대선 만으로 유럽정치 전체를 읽기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마침 오는 5월에는 유럽의회 선거가 예정돼 있다. 인종주의를 비롯한 극우주의와 포퓰리즘 정치가 만연된 유럽에서 과연 브렉시트 논란이 어떻게 결론이 날지 그리고 유럽정치 내부의 토론 과정에서 슬로바키아가 어떤 목소리를 낼지도 궁금하다.

하지만 극우주의와 맞서고 부패세력과 싸워온 카푸토바의 정치적 상징을 고려한다면 EU가 한 목소리를 내는 데 힘을 실어 줄 가능성이 높다. 이를 위해서라도 카푸토바는 대통령 당선보다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 비록 내치에서는 실권이 많지 않지만 EU에서 의미있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라도 국민적 지지가 뒷받침 돼야 한다. 또 그래야 유럽정치가 극우주의와 포퓰리즘으로 더 깊이 빨려 들어가는 것을 차단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게다가 내년 총선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래저래 정치신인 카푸토바의 정치행보, 아니 그의 새로운 ‘정치투쟁’에 관심이 더 모아지는 이유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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