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대한민국 역사에는 학살 사건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자국의 군대와 경찰에 의해 학살이 발생했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한국전쟁 때 민간인 학살 규모도 컸지만 8.15 해방 때부터 한국전쟁에 이르는 5년 동안 학살이 많이 발생했다. 대표적인 학살 사건이 바로 제주 민중 학살이다. 제주도 인구 27만 가운데 2만 5천~3만명이 미군과 군경 그리고 군경의 비호를 받던 서북청년단을 비롯한 파시스트세력에 의해 목숨을 빼앗겼다.

지금도 ‘공산반도’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에 대한 자위적 조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게 믿고 있는 국민도 상당수가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4월 3일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를 맡고 있던 홍준표씨는 SNS를 통해 제주 4.3 추념식을 “좌익폭동에 희생된 양민들의 넋을 기리는 행사”라고 말했다.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을 게을리 한 결과다. 진실이 가리어진 사이 가해들은 의기양양한 삶을 살았고 피해자들은 숨죽이며 살았다. 정의가 짓밟히고 진실이 땅에 파묻힌 세월이었다.

교과서는 6월 항쟁이 일어난 87년까지 4.3항쟁을 폭동이라 서술했다. 필자는 어렸을 때 4.3폭동, 대구폭동, 여순반란... 이렇게 쭉 읊어대면서 순서대로 외웠다. 사정도 모르면서 그곳에서 누군가가 폭동을 일으켰고 폭동으로 인해 불상사가 났고 ‘질서 회복’을 위해 공권력이 투입되었나 보다 이렇게 생각했다.

교과서를 통해, 학교 선생님을 통해, 언론매체를 통해, 웃어른을 통해 끊임없이 반복해서 듣게 되면서 어떤 의심도 하지 않은 채 ‘주입시키는 대로’ 받아들이는 로봇 같은 존재가 됐다. 그러면서도 나는 나 스스로의 판단력을 통해 사물을 바라본다고 생각하면서 자부심을 갖고 살았다. 허위의식의 포로가 된 것이다.

지난 김대중 정부 때 와서야 제주 4.3특별법이 제정됐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4.3학살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를 했고 2006에 또 사과했다. 오랜 침묵을 깨고 국방부와 경찰이 4.3항쟁 71주년을 맞아 유감을 표했다. 기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또 미지근하게 표현해서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유감과 애도’를 표한 것도 나름 의미는 있을 것이다.

꼭 사과를 해야 할 가해자가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바로 미국이다. 4.3학살이 본격화된 시기가 미국 군사정부라 할 수 있는 미군정 기간 때다. 모든 걸 미군정이 지시하고 지휘했다. 정부가 수립된 직후인 1948년 8월 24일 한미군사협정이 체결됐다. 이후에는 미국이 군사 작전권을 보유했고 미국 군사고문단이 이승만 정권을 사실상 지휘하고 있었던 때이다. 학살이 본격화된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이다. 남한을 점령한 뒤 미국이 일본이나 독일에서처럼 민주주의를 시행했다면 또 문제를 이성적으로 해결하려 했다면 4.3학살은 절대 발생할 수 없었다.

4.3항쟁의 근본 원인은 미소의 분할 점령이다. 식민지의 고통을 겪은 조선민족을 분할 점령한다는 발상부터 잘못됐다. 식민지 조선을 전리품 삼아 마음껏 요리하고자 한 게 미국의 의도였으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미국은 너무나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자신들로 인해 학살된 조선민중과 유가족, 대한민국 국민에게 사죄하고 마땅히 배보상해야 한다.

지난해 10월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가 10만 9천여명의 서명을 받아 미대사관을 통해 미국에 전달했다. “제주4.3학살에 대하여 책임을 인정하고 유족과 제주도민에게 사과할 것” “미국은 한국 정부 및 시민사회와 함께 제주4.3에 대한 미군정과 미군사고문단의 법적, 정치적, 도덕적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에 착수할 것” “미국은 진상조사를 바탕으로 제주4.3에 대한 법적, 정치적, 도덕적 책임에 상응하는 피해회복 조치를 시행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은 오늘까지 아무런 대꾸가 없다.

그 동안의 야만적 행동과 오랜 침묵 그리고 무시로 일관한 태도에 대해 사죄하고 배보상한다면 원혼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고 유가족의 찢어지는 마음도 조금이라도 풀릴 것이다. 이 길이 바로 한국 국민과 미국 국민이 진정한 우호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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