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봄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계절이건만 날씨 변화를 종잡을 수 없다. 날씨가 아침저녁이 다르고 럭비공 튀듯 한다. 우리생활 주변에서 예측이 불가한 상태를 이야기할 때에 곧잘 럭비공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그것은 예측할 수 없는 변화성 때문이다. 타원형으로 만들어진 럭비공이 지면에 닿는 각도에 따라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변화무쌍한 상태에 이르는 경우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다”고 말한다. 사회현상이나 인생의 삶에서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나 대비할 수 있어 안정을 가져다주지만 럭비공이 튀듯 예측 방향을 알지 못하는 경우라면 의외의 상황 발생으로 사람들이 많은 수고를 겪게 된다.

사람들은 럭비공이 튀는 방향을 두고 여러 가지 예로 든다. 속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는 정치인을 그에 비견하고, 꽃샘추위가 닥치는 삼월 말이나 사월 초의 기상변화도 그것에 견준다. 그러하듯 지난 주말은 정말 기상변화가 심하였다. 새벽에 비가 내린 후 아침에는 흐렸다가 낮 동안 햇빛이 났고, 그러다가 저녁에는 다시 비가 오더니만 밤중에는 진눈깨비까지 흩날렸다. 하루 동안 날씨 변동이 많았으니 럭비공 튀는 방향의 불가예측성을 기상에 갖다 붙일만하다.

이 같은 변화무쌍한 날씨와 같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을수록 국민은 살아가기가 무척 피곤한데, 요즘은 어디를 가서, 어떤 사람을 만나도 “세월이 수상하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먹고 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기초생활인 의식주에서 식(食)해결을 하소연하는 것은 분명 아닐진대 만나는 사람들마다 불만을 드러내는 것은 우리의 정치·경제·사회 등의 다방면에서 예측 가능성이나 안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은 서민생활이 장차 나아질지 기미가 보이지 않고 청년들은 취직이 안 돼 힘든 판에 관료들과 정치인들은 잘도 지낸다고 불평을 털어놓는다. 그도 그럴 것이 며칠 전 정부가 공개의무 대상인 고위공직자와 국회의원 등의 재산변동 사항을 공개했는데, 정부 고위공직자 천873명의 평균재산이 12억여원인데다가 1년 전보다 1인당 5천 9백만원 재산이 증식됐다는 내용이다. 고위공직자들은 서민이나 영세사업자들과는 다르게 어렵거나 부도로 사업을 망칠 일 없이 다달이 꼬박 봉급을 받고 있으니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산은 불어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국민이 보기에는 고위공직자들의 재산 증식을 고운 눈으로 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 공개가 법적사항이다 보니 매년 발표 때마다 지켜보는 국민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정부 관계자는 고위 공직자 1인당 늘어난 재산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까지 붙이는 자상함까지 보였다. 재산 증식의 원인은 보유하고 있는 주택의 공시가격이 상승돼 가액변동액이 1900만원이 올랐고, 급여 저축이나 개인별 상속 수증 등으로 인한 순재산증가액이 4000만원 가량 올랐다는 것이다. 그들은 좋은 집을 보유하고 있고, 게다가 부모로부터 재산을 상속받거나 매달 받는 봉급 중 생활비에 보태고 남는 돈으로 저축을 한 결과라 하니 정상적으로 이뤄진 고위공직자의 재산 증식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왈가왈부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국민세금으로 국회의원들에게 OECD국가 가운데 높은 수준의 의원세비를 주고, 정부 고위공직자들에게 꼬박꼬박 보수를 지급하는 것은 나라정책을 잘 만들고 열심히 공직을 수행해 국민들의 걱정을 줄이고 살기 편하도록 해달라는 뜻일 거다. 하지만 그런 일 없이 말만 국민을 위하네, 국민의 봉사자네 하면서 자신만의 부귀영화를 꾀하고 있으니 서민들이 불만을 터트릴만하다. 요즘처럼 국회가 국민을 위해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 빈둥빈둥 한다면 왜 국회가 존재하는지, 또 지방자치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며칠 전에 점심식사를 함께 한 지인들은 그랬다. 하나같이 옛 시절을 그리워하는 투로 장광설을 풀면서 “요즘 살기가 왜 이리 팍팍한지 모르겠다”며 푸념을 털어놓았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우리사회에서 정치·경제·안보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모르겠다는 소리다. 그러면서 정치가 잘 돼야하건만 그렇지 못하니 국민 지탄을 받고 있는 정치꾼들은 정계를 영원히 떠나야한다고 열을 올리기도 했다. 한 사람이 열심히 말하는 동안에 다른 지인은 그러려니 하면서 듣기 싫은 것은 한쪽 귀로 듣고 흘러 보내는 게 건강에 좋다고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

예측 가능한 사회였으면 얼마나 좋겠으랴. 특히 경제분야에서 안정성은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언제쯤이면 침체된 경기가 회복돼 내수경기가 풀리고, 완전 취업이 되겠다는 등 그런 예측은 도저히 불가능할까. 지난 주말은 하루에 사계절을 다 겪는 듯한 고르지 못한 날씨 탓으로 이 땅에 찾아온 봄의 정취를 느끼지 못하고 내내 불편했다. 그러했으니 지인이 말한 “봄이 왔지만 봄같지 않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기분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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