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속으로] ‘호모 루덴스’가 된 프로야구팬
[스포츠 속으로] ‘호모 루덴스’가 된 프로야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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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지금까지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이런 이벤트는 없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볼거리였다. 프로야구의 새로운 명물을 보면서 인간이 가상현실을 즐기는 ‘상징의 동물’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됐다.

1백여년전 네덜란드가 배출한 인류학자 호이징하는 인간을 놀이하는 동물, ‘호모 루덴스’로 불렀는데, 프로야구장 관중들의 눈앞에서 요지경 세상이 펼쳐질 줄 누구도 몰랐다. 호이징하가 말했던 놀이는 가상현실을 만들고 역할 게임을 즐기는 것을 뜻한다. 물론 그가 살았을 때 가상현실이라는 용어가 없었으므로 그는 이를 당시에는 ‘마법의 원’이라고 불렀다.

가상현실을 넘어서 현실 세계를 가상으로 복제하는 증강현실(AR)기법을 구현한 이색적인 놀이였다. 실제 경기장 모습을 보여주는 야구장 전광판에 상상속의 동물인 비룡이 하늘을 날고, 경기장 지붕에 앉았다가 그라운드 위에서 포효하는 영상이 수분간 등장했다. 이벤트는 지난 23일 통신 라이벌 SK와이번스와 KT위즈의 프로야구 개막전이 열린 인천문학구장 행복드림구장에서 벌어졌다. 비룡은 SK와이번스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SK와이번스의 관련 계열기업인 SK텔레콤은 5세대 이동통신(5G) 서비스의 주력인 증강현실로 비룡을 형상화해 영상을 통해 야구장 속으로 날아다니게 했다. 하늘을 날다 힘이 빠진 듯 지친 기색을 보이던 비룡은 관중들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5GX AR’을 접속해 응원 버튼을 누르자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섬광으로 변해 SK와이번스 라커룸으로 날아 들어갔다.비룡 영상은 공중파 야구 중계채널과 유튜브 등 SNS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방영돼 TV나 스마트폰으로 중계를 보는 야구팬들은 이날의 생생한 모습을 즐길 수 있었다.

SK와이번스의 비룡 이벤트는 미국에서도 화제가 됐다. 미국 MLB닷컴은 26일 ‘컷4’ 코너에서 “한국의 SK와이번스가 개막전에서 불을 뿜는 용을 불러냈다”라며 관련 내용을 소개했다. MLB닷컴은 “SK는 증강현실 기술을 이용했는데, 용은 경기장 허공을 한 바퀴 돈 뒤 그라운드로 내려왔다”라며 “경기장의 관중들은 스마트폰 앱으로 이 모습을 지켜봤다”라고 전했다.

야구의 본마당 미국에서도 한국 프로야구가 IT 기술을 활용해 동양의 신비로운 전설의 동물인 용을 경기장에서 팬서비스로 선보일 줄을 미처 몰랐을 것이다. 구한말 미국 선교사에 의해 처음으로 소개됐고, 일제 식민시절 일본에 의해 대중화된 야구는 지난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뒤 십수십년만에 IT 기술의 첨단국가의 기술력으로 놀랄만한 볼거리를 만들어내게됐다.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말이 있다. 회수(淮水) 이남에서 자라는 귤을 회수 이북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이다. 환경에 따라 사람이나 사물의 성질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한국 야구도 미국과 일본의 영향을 받아 성장했지만 프로야구를 시작하면서 문화의 환경의 차이로 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SK와이번스의 비룡 이벤트도 변화해가는 한국프로야구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MLB닷컴의 비룡이벤트 보도는 한국 스포츠의 팬서비스문화도 잘만하면 미국과 일본 등으로 전이할 수 있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일상의 고단함과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해 놀이와 게임을 발명하고 스포츠를 즐기는 인간의 유희적 본성은 동양이고, 서양이고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다만 문화와 환경의 차이로 지역적인 특색을 갖추게 된 것이었음을 역사는 말해준다. 호이징하가 지금 살아있다면 비룡 이벤트를 즐긴 한국의 프로야구팬을 보고 “역시”라고 무릎을 딱 치면서 흐뭇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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