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연합뉴스) 일본 여.야가 조선왕실의궤 등 한반도 약탈 문화재를 한국에 돌려준다는 한.일 도서협정 비준을 두고 치열한 물밑 싸움을 벌이고 있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지난달 30일 제1야당인 자민당의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총재와의 전화회담에서 한.일 도서협정 비준에 협력해달라고 요청했다.

오는 3일까지인 임시국회 회기 안에 국회 승인을 받을 수 있게 도와달라는 것.

여.야가 격렬한 대립을 벌이는 가운데 간 총리가 야당 총재에게 전화를 걸어가면서까지 별도로 협정 비준을 요구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간 총리가 이처럼 한.일 도서협정의 국회 통과에 공을 들이는 것은 이것이 12월 중순으로 예상되는 이명박 대통령의 방일 일정과 관련이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일 정상은 11월14일 일본 요코하마(橫浜)에서 만나 '일본이 조선왕실의궤 등 한반도에서 가져온 도서 1천205권을 돌려준다'는 내용의 협정문에 서명했다. 협정문에는 협정 발효 후 6개월 안에 책을 한국에 인도한다고 적혀 있지만 간 총리는 내심 이달 중순 이 대통령 방일 시에 서둘러 넘겨줄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측에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교섭을 재개하자고 채근하는 일본으로서는 뭔가 '성의'를 표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나 러시아 등 주변 국가와 갈등을 빚는 일본은 요즘 한.일 FTA에 외교력을 총 집중하는 양상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달 26일 야당 주도로 정권 2인자인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관방장관에 대한 문책을 결의한 뒤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간 국회 문을 다시 열 필요가 있다.

관례대로라면 매주 금요일에 열리는 중의원 외무위원회와 참의원 상임위원회, 그리고 다시 국회 본회의 일정을 모두 거쳐 협정을 비준하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여당(민주당)과 정부 일각에선 임시국회 회기를 연장해서라도 한.일 도서협정을 처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자민당 등 야당은 '한.일 도서협정을 조속히 처리하자'는 원론에는 동의하면서도 좀처럼 여당의 요구에 응하지 않은 채 애를 태우고 있다. '야당 자존심이 있지, 관방장관 문책 결의까지 해놓았는데 정부.여당의 사후 조치도 없이 어떻게 국회 문을 열자는데 동의할 수가 있느냐'는 야당 의원들의 속내도 들려온다.

속이 탄 간 총리는 지난달 30일 한.일(일.한)의원연맹 소속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야당은 여당을 훼방놓는 게 일인지라, (문화재 반환이) 조금 늦어지고 있다"며 "어떻게든 빠른 시기에 건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가 야당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한편 여.야의 물밑 조정이 치열해지자 일각에서는 "야당이 여당의 애를 태울 만큼 태우다가 정치적 양보를 받아낸 뒤 회기 마지막 날인 3일에라도 한.일 도서협정을 비준해주지 않겠느냐"는 예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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